<가족>혈육의 묵직한 힘
자녀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올립니다.(수필)
혈육의 묵직한 힘
현대중공업(주) 엔진영업기획부 차장 배 재록
내 고향은 껴안고 싶은 바람 스치고 별과 달이 놀러 오는 두메산골이다.
자식 욕심이 많았던 부모님은 육남매를 낳았고 그 그리운 피붙이들의
얼굴이 투명한 유리 액자 속에 넣어져 고향 집 안방 벽면에 걸려 있다.
30년 전 형님 혼례식 때 찍은 흑백의 가족사진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모님 곁에 중학생 교복을 입은 내가 서있고
혼례복을 입은 형님내외 곁으로 두 분의 누님이, 그 앞에는 눈이 맑은
남동생과 갈래머리 여동생이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해서 초라했으나 그래도 맑고 단정한 내 혈육의 사진 속 얼굴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박하사탕처럼 맑은 표정이어서 걸작이다.
빛바래고 파리똥이 앉아있는 그 흑백 사진 속에는 커가면서 가족끼리
창출해낸 희로애락의 진솔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시공을 초월해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폭로를 할 듯 역동적이다.
드문드문 얹힌 추억의 파편들이 영화 장면처럼 스쳐간다,
지독히 못살았던 그 시절, 아픔만큼 상처가 아리고 쓰려도
내게 있어서 그 즈음의 기억들은 온통 동화가 되어, 드문드문 얹힌 추억의
파편들이 영화 장면처럼 스쳐간다,
올해 어머니 생신날 육남매 형제들이 그 가족사진이 지키고 있는
고향집에 모였다.
큰 누님이 모처럼 친정 나들이를 해서 혈육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바다로 나갔던 연어가 수만 킬로를 헤엄쳐 강줄기 타고 돌아오듯이
이른 나이에 둥지를 떠났던 형제들이 가족의 성지순례처럼 모였다.
성미가 급한 시간은 내달려 산골의 밤은 깊어 가고,
고향의 음식 맛처럼 구수하고 해맑은 웃음소리가 돌담을 넘나든다.
가끔씩 높은 음의 목소리가 휑하니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로 승천 했다.
살면서 가족만큼 우리에게 기쁨, 슬픔, 위로, 절망을 잉태하는 것은
없나 보다. 형제끼리 극한 다툼을 했다가 화해하는 과정에서
급속도로 사랑을 확인해가는 것이 가족의 힘 이라아닌가 여겨진다.
비록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자주 만나기는 어려워도 매일 만난
것처럼 가슴에 안고 사는 것이 혈육의 정이다.
가족끼리 만나면 어떤 희망과 힘을 준다.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기분이 극도로 좋은지 연신 약주를 드시면서
형제들 대화 틈바구니에서 중계역할도 하시고 그때의 상황을 증언을
하면서 자리를 함께 했다.
문중에 서 최고 어른이신 아버지의 조상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
약주가 과해지자 이 지역 시조에 해당하는 5대조 할아버지의 산소를
돌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몇 번이고 죄인이 된 마음으로 토로를 하셨다.
산소가 워낙 멀고 높은 산중에 있는데다가 지금까지 벌초를 다녔던
문중 어른이 몸이 불편하여 3년째 방치되고 있고, 젊은 친척들이
설명만 듣고 몇 차례나 찾아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를 하여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4대조 까지만 모시는 전례와 문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산소
돌보기를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시조의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풍수지리상 이 산소가 명당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안타가움을 풀어 드리기 위해 사회인 산악회 산행대장을 했던
동생과 함께 산소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다음날, 산골의 아침은 수탉의 울음소리가 몰고 왔고,
버지를 모신 승용차로 1시간가량 비포장 산림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이동했다. 차와 아버지를 안전한 곳에 남겨두고 지도를 들고
첩첩산중으로 길을 나섰다.
멧돼지들이 우글거리는 어시시한 산속을 3시간 동안 수색한 끝에 어렵사리
좌우에는 산 능선이 마주보고 있고 앞이 탁 트인 명당에 있는 산소를
발견했다.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듯한 흥분으로 아버지와 산소를 잘
아는 팔촌 아재로 부터 진위를 확인하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사죄하는
심정으로 벌초와 성묘를 했다.
문중 친척들로부터 칭찬의 전화가 빗발쳐 오자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오랫만에 보았다.
가족의 뿌리와 더불어 혈연의 묵직한 힘을 느낀 순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벽면에도 대형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대학생이 된 두 아들과 함께 찍은 우리집 가족사진은 고향집 가족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정과 감동은 못하지만 씩씩하고 힘이 넘친 모습을 하고 있다.
학업 때문에 어절 수 없이 가정이란 둥지를 떠나 떨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 지는지 궁금하다.
학업 때문에 어려서부터 고향을 떠나 홀로서기를 했던 나에게 있어서
가족은 늘 눈물겨운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발행했던 우리 집의
가보인 가족신문 <완두콩과 홍삼원>을 펼쳐 본다.
전국대회를 두 번이나 제패했던 가족신문에서 아이들의 가족에 대한
정도를 가늠 할 수 있다.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취재해서 만들어진 가족신문에서
좋은 가족의 의미를 느꼈고 장차 제2의 가족신문 발간을 논의 해
볼 참이다.
사회라는 커다란 체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기능을 해주어야 할
가족시스템이 가족붕괴, 가족해체로 이어지고 가족의 응집력이나
유대가 약화되거나 대화가 단절되는 등의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는 작금에
가족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고 기쁨인지 더 나아가
가족을 벗어난 행복은 착각일 뿐이고 가족을 외면한 삶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고향집 가족사진을 복사해서 우리 집 가족사진 곁에 걸어 두고
가족의 소중함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음미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