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12.11일 팔공산 신비의 구석진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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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 수태골-신림봉-낙타봉-동봉-비로봉-서봉 골짜기-수태골 (약9km, 5시간 소요)
버스에서 내린 건천 휴게소의 바람은 거칠게 얼굴을 강타 했다. 콧날이 시큰하게 한바탕 덮치고 저만치 달아 난 차가운 바람은 어느 곳에서 방황을 하다가 훈훈한 봄바람을 몰고 다시 오겠지.
허무하고 씁쓸해 마음이 허한 팔공산 수태골을 걸었다. 바람에 진혼곡을 남기며 가을의 전설로 남아 떨어지는 잎새처럼 비련의 역사를 두고 가을은 떠나가고 있었다. 치우친 나의 감흥을 바로 잡으며 민 낯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앙상한 나무와 잎새에서 미국의 단편소설가 오헨리 가쓴 "마지막 잎새"를 떠올렸다.
폐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노인은 창밖 벽을 타고 올라오는 댐쟁이의 생명력에 희망을 가진다. 겨울 어느날 담쟁이 잎새도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잎새 하나가 떨어졌지만 건물 벽에 꽉 붙어서 존재 한다. 노인은 눈을 감았지만 잎새는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소설 말미를 장식한다.
15년전 친구들과 태화다리 밑에서 무심코 버스를 탔는데 그것이 무한산악회 였다. 두 번째 산행에 참여하자 나더러 총무부장을 하란다. 도망치며 거부했지만 여심에 넘어가 임원이 된다. 1년후부터 4번에 걸쳐 사무국장, 2번에 걸친 팔자에도 없는 산행대장, 15대와 16대의 2번에 걸친 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구원투수 격으로 역임한 21대, 22대 회장을 마지막으로 자연인으로 돌아 간다. 열성으로 도움과 참여를 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는 친구의 의리를 다하기 위해 무한과 함께 하려 한다. 23대부터 6년간 회장후보가 예정되어 있어 마음이 놓인다.
동봉까지 산 오름이 체력적으로 힘들게 했다. 골짜기 길섶에는 살 얼음이 얼어 위협을 가해 온다. 긴 호흡을 가누며 어렵사리 동봉을 정복 했다. 운무가 감고도는 영천의 산하는 아름다웠다. 일망무제다. 하산을 했으나 찬바람이 몸을 괴롭힌다. 동봉 바로 건너편 비로봉으로 향한다. 1,198m다 비로봉에 올랐다가 따스운 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진수 성찬이다. 육지와 바다에서 난 반찬이 일품이다. 포식으로 돌아 세우며 우정에 찬 주안을 하고 일어 선다. 김문건 선배의 썩음주가 기분을 상승 시킨다.
서봉까지 제법 걸음 걸이가 길어 진다. 난 코스지만 의기투합 하여 서봉에서 바로 하산을 했다. 어썩하고 마음이 허해 온다. 자연의 품속에서 자연의 냄새에 취해 엔돌핀이 솟구친다. 우수호 대장이 앞서 갔지만 오늘은 구석진 길을 걷고 싶었다. 세상의 방이 사각인 것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편안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편안한 방구석 보다는 오늘은 등산이 훨씬 좋다.
험준한 길이고 나무가 밀착하며 스릴을 만들어 낸다. 자주 다니지 않은 어쓱한 길에서 대자연의 광경이 스킨십을 하듯이 즐거움을 잉태 하기 시작했다. 손대지 않은, 때묻지 않은 자연의 풍광이 감동적이다. 계곡 중간 쯤에서 수십미터 놀치의 절벽으로 계곡물이 흘러내리며 오묘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밧줄도 타고 넘어져도 보고. 얼음치기도 해보고.. 긴 3시간의 시간속에 갖혀 감흥을 오열 시켰다. 팔공산의 구석진 곳의 감동이 오래 지속된다. 걷는 길이 풍신하고 감촉이 감미롭다. 내 주관이 끼여 아름다운지 몰라도 오랫만에 썩 괜찮은 등산을 했다.
건천까지 차로 달려 식당에서 올 해 마지막 하산주를 나누었다. 함께 한 하루가 즐거웠고 행복 했다. 무한이 추구하는 재미있는 팔공산 산행이 마무리 되었다. 짧은 거리가 주는 여유와 환희가 어우려진 하루였다. 나는 무한산악회와 친구가 되기로 확약 했기에 애착을 가질 것이다. 함께 모이는 악우들이기를 기대 해 본다. 웃고 웃으며 보낸 하루가 신난 건지 분위기는 울산에 당도 해도 이어 졌다. 조금은 자제를 해야 한다는 반성을 권유 해 본다.
함께한 악우들에게 마음을 담은 고마움을 남기고 스텝들에게 수고 했다는 큰 박수를 보낸다.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변하겠다는 의미다. 무한의 젊은 후배들이 재미있고 알찬 산악회를 일구는데 성공 하리라 확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