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2.09일 오대산 눈을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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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상원사 주차장-상원사-중대사자암-적멸보궁-비로봉- 상왕봉-상원사 주차장 (산행시간 4시간) 눈이 만든 세상은 황홀했다. 하늘의 솜씨는 인간들 중에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는 걸작이었다. 오대산 비로봉을 가는 도중, 내 안태고향 울진에 내린 눈이 극도로 환상적인 감흥을 일으키며 눈앞에 펼쳐진다. 오직 울진, 삼척 지역에만 눈이 내려 오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7번국도에서 만난 눈의 세상은 충격적인 멋을 선서해 주었다. 대지 위에 펼쳐진 멋의 진미를 느끼며 평창으로 향한다.
갈 수록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눈은 사라지고 민둥산이다. 자꾸만 환상의 눈 세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강렬한 반항을 불러온 멋을 본 후유증이다. 위대한 자연이란 말이 앞선다. 정오가까에 상원사 주차장에 당도했다. 눈 덮인 비포장 도로에 버스의 흔들림이 많아 심란하다.
눈이 덮인 산을 바라보며 산행을 시작했다. 아이젠을 해서인지 걸음 걸이가 상당히 불편하다. 발아래 쇳덩어리를 압박하는 충격이 온 몸에 전해 온다. 편하지 않는 걸음으로 비로봉을 향해 용을 쓴다. 최근 사태 때문인지 등산갹이 뜸해서 빠르게 걸어진다. 중대사자암을 향해 가파른 길이 앞을 가린다. 눈이 잘 치워진 길이라 걷기가 쉽다. 거셀 줄 알았던 바람은 잠자고 침묵이 흐르는 산속은 따뜻한 햇살이 눈을 녹인다.
상원사를 지나고, 중대사자암을 지나 적멸보궁을 지났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5대 사찰 중 하나인 적멸보궁을 지나 비로봉으로 향한다. 전설 속 까지는 사라진 것인가. 사방을 봐도 보이지 않고 온 몸이 까만 까마귀가 대신 울어 준다.
좋은 징조인가 길조인 까마귀가 기분을 상승시켜 준다. 울음소리로 울려주는 영혼의 소리가 귓 등에 꼽힌다. 과히 영험한 까마귀가 내 안의 나쁜 기운을 앗아 갔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눈과의 싸움이 전개 된다. 발에 밟히는 눈이 부서지는 소리가 뽀드득 거린다. 세상에 밟혀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드물다. 거세게 항의를 하 듯 차가운 눈을 발등에 뿌리며 대항한다. 길은 애써 올랐던 봉우리에서 힌 없이 깊숙하게 내려 선다.
탐에서 깨어난 차가운 바람이 침입자를 공격한다. 틈만 보이면 그 차가운 바람을 뿜어 괴롭힘을 준다. 장갑을 낀 손끝이 시려올 만큼 바람이 세차다. 가파른 오름이 시작된다. 비로봉까지 오르는 데 힘이 많이 든다. 정상에 서서 '천성천하유아독존'을 외친다. 세상 모든 봉우리들이 나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듯 하다. 1,563m 비로봉이 위용을 자아낸다. 눈 덮힌 산 속에 날뛰는 멧돼지는 보이지 않는다. 동물애호가 사람들이 뿌려놓은 콩이 눈에 띈다.
어디로 향할 것인가? 두 개의 갈림길에서 무한에 처음 온 동료 무안님이 종용한다. 처음에는 왔던 길로 내려서기로 했는데 방향을 바꿨다. 상왕봉 방향으로 가면 꼭 하트모양으로 돌게 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상왕봉으로 발걸음을 내 딛었다. 동행한 권성용악우와 셋이서 눈속을 걷는다. 눈이 많이 내려 발목을 넘고 동아리까지 쌓였다. 사람들이 많이 밟지 않아 반은 눈으로 덮여있다.
앞선 사람들이 남긴 발자욱을 따라 발을 내딛어야 한다.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넘어지고 눈밭에 뒹굴어야 한다. 발자국을 잘 남겨야 뒷사람의 고생을 덜어준다. 앞선 사람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얼마를 걸었을까? 너무나 차가운 바람이 불어 선뜻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시장기가 온다. 눈 밭에서 맛보는 배고픔은 참기 어렵다. 세명 다 걸음 걸이가 프로급이다.
상왕봉 햇볕드는 곳을 자리 잡아 점심식사를 했다. 셋이서 눈속에서 맛 본 정찬은 꿀맛이다. 뒤 늦게 합류한 명수씨와 더불어 이제는 네 명이다. 내리서는 길은 험준하고 눈이 많아 무릎까지 덮었다. 보호대를 하지 않은 것은 배 불찰이다. 눈이 양말속으로 침투하여 차가운 시련을 준다. 발자국을 자칫 잘못 밟으면 중심을 못잡아 넘어진다. 잘못하다간 가파른 낭떠러지가 황천길을 재촉한다.
눈속을 걷는 일은 모험에 가까웠다. 한 참을 지나 뒤를 돌아 본다. 엄청난 거리를 걸어 온 기분이다. 바삐 내려 오느라 놓친 풍경들이 뛰엄뛰엄 보인다. 참으로 아름답고 오묘한 대자연의 속살을 유심히 본다. 유심히 봐야 보이는 자연의 속살을 더 비리 본다. 자연의 작품을 흉내 낼 깜도 없다. 무수하게 밀려오는 감흥을 옮길 문학적 능력도 고갈 되었다.
이 깊은 신속에 서서 여태껏 느끼지 못한 감흥을 느껴본다. 떠나기 싫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묵직한 사유를 해 본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눈 위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내 이름 석저를 마음속으로 쓰 놓고 유심히 본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병풍처럼 빙 둘러싼 산 봉우리에게 물어 봐도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래 참은 오줌발로 눈 위에 그림을 그려 놓고 내려 선다.
세찬 바람은 여전하고 시린 양말 속에서 아픔이 폭발한다. 가파른 계곡을 내려서니 원점으로 회귀했나 보다. 저 먼 곳에 내가 올랐던 봉우리가 나를 굽어 본다. 위대한 산은 자신을 찾아 준 나에게 감사의 표시를 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하얀 눈으로 앞길을 막아 섰겠는가. 눈에 누운 맛을 보았다. 따뜻하고 마음이 맑아 왔다. 그것이 눈의 매력인지 싶다. 비로봉과 상왕봉이 내내 아쉬운 듯 손짓을 한다. 정이 들기 전에 애써 눈길을 돌려 버린다. 참으로 진한 감흥을 오대산에 내려 놓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희노애락이 다 준 산행이었다.
잘 나가던 산악회가 삐진 표정을 짓고 있다. 미소를 찾아야 할 무한이 된 듯하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 답게 다 내려놓고 동참을 해야 한다. 자세히 보고 유심히 생각해야 숨어 있는 미소가 보인 법이다. 아픔이 있어야 새살이 돋아 나는 법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