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되고 상을 받다

2020년 독도문혜대전 입상 '흰 눈으로 조각한 성인봉'

在綠 2021. 2. 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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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해발 984m, 울릉도 주봉 성인봉을 향해 오른다. 울릉도는 신생대 화산폭발로 탄생된 신비한 돌섬이다. 외세침입과 풍파를 이겨내며 한반도 최동단에서 나라를 지키는 섬. 산모양이 성스럽게 생겼다 해서 성인봉이라 부른다. 영험한 능력 때문에 부른다고도 했다. 울릉도는 과거 우산국이고, 성인봉은 우산국의 지붕에 해당된다. 5각형인 울릉도는 누군가 불가사리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섬의 중심부이며 불가사리 항문격인 성인봉에서 5개 능선이 뻗어 뼈대를 이루었다. 악을 물리치고 온갖 사특한 기운을 쫒는다는 불가사리 섬을 오른다.

거대한 산 봉오리를 가졌음에도 산이 아닌 봉()이다. 성인봉(984m), 형제봉(915m), 관모봉(686m), 두리봉(602m) 등을 산이 아닌 봉이라 부르는 이유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제주의 386개 오름처럼 흡사하게 봉이라 불렀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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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봉을 오르며 아무도 밟지 않은 생경한 눈길을 걷는다. 눈은 감추지 못하는 순백을 지니고 있다. 눈으로 덮인 울창했던 원시림을 지나자 거뭇한 산의 침묵을 깨는 소리가 난다. 눈 더미에 짓눌린 푸른 산죽대가 뚝심을 발휘하며 버티고 있다. 눈은 가끔씩 울릉도 생명체를 훈육하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눈을 뿌린다. 시련은 섬을 강하게 만들어 주지 싶다. 가진 가지가 많은 나무는 무거운 눈을 이고 내려놓지 못해 고통하고 있다. 원형형태라 위쪽 가지가 눈을 못 비워서 부러지는 참상을 겪고 있다. 원뿔형 침엽수는 눈이 아래쪽 큰 가지에 쌓여 윗가지 위험성을 줄였다. 강한 바람이 불면 원뿔 측면으로 빠지도록 진화를 했다. 뾰족한 이점을 활용하여 눈이 가지아래에 쌓여 무게를 분산시키고 광합성을 쉽게 한다.

눈 위에 남긴 내 발자국이 삐뚤삐뚤하다. 지금 내 마음이 저런 건가 싶기도 하다. 산길이 굽었기에 순응하며 비뚜루 하게 바둥바둥 걸었을 뿐인데도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다.

눈 위에 산 짐승이 지나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멧돼지가 지나간 발자국이 보인다. 노루가 지나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시야에 잡힌다. 고라니도 지나가고 이름 모를 짐승이 지나갔을 눈길을 걸어 본다. 그 발자국을 따라 가면 짐승을 만날 수 있지 싶다. 눈 위에 난 발자국은 사냥꾼이 추적 할 수 있는 표적이다. 그래서 눈 산은 신과 악마가 함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발자국을 따라가 산짐승을 사냥을 한다. 사냥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 짐승은 죽음으로 내몰리는데 그 길을 걷는 내 마음도 저승사자의 표적이 될까봐 두렵다. 신이 만든 작품에 흠결을 낸 죄 값이지 싶다. 자연은 순리를 거역하면 분노를 한다. 길은 애초 짐승이 낸 발자국에서 시작되었다 했다. 먹이사슬을 따라 길이 만들어지고 덕분에 인류문명이 탄생했다고 역사는 역설하고 있다.

밟히는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촉감이 서걱 서걱하다. 조금 느리게, 점점 느리게 리듬으로 걷는 속도를 변화 시킨다. 위험한 길에서 정신을 집중해 카타르시스를 초월한다. 가파른 언덕을 지나며 바로 곁에 저승사자가 동행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오싹해진다. 은근슬쩍 낭떠러지로 밀어 버릴 것 같은 위협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한다. 융숭하게 파인 계곡은 생명을 보듬는 자궁 같아 보인다. 눈이 감정회로를 자극했기기 때문이다. 성인봉을 백대명산 반열에 선정된 것은 계곡의 수원을 이루고 잘 본존 된 식생이 특이한 원시림 때문이다.

수많은 블랙홀을 무사히 지나 호흡음을 내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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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간만에 성인봉 정상에 오르자 마치 꿈을 꾸는 유토피아를 보는 느낌이 든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무릉도원에 올라온 기분이다. 신비의 성인봉 주인공은 잠시 출타 중인지 보이지 않는다. 천고지 이상에는 신선이 산다는데 성인봉은 미달해 신선이 없지 싶기도 하다.

잿빛 하늘이 더 낮게 내려와 성인봉 정상과 손을 잡아 천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하늘과 천지를 오르내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축하의 선물인가. 순백의 눈 선물을 들고 하늘이 슬그머니 내려와 축하를 보내 주니 무아지경의 마법에 빠져든다. 눈 덮인 산봉우리는 천사가 입은 순백의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곡선미가 아스라하고 절묘하다.

눈으로 조각된 환상적인 풍광에 가벼운 탄성을 질러본다. 신의 솜씨로 빚어낸 자연의 위대한 걸작이지 울릉도를 치장하고 있다. 하늘의 명을 받고 내려와 성인봉을 눈이 조각했다. 순결하고 청결한 순백색 눈 위에 일필지휘로 덧칠해 불후의 명작을 조각한 것이다. 그 눈은 산을 지배할 근엄한 카리스마가 있고 권위가 있어 보인다. 정복자의 위엄이 있는 성인봉은 어떤 외세의 침입도 막을 위력을 지녔기에 대한민국 변방에서 영토를 지켜내고 있지 싶다.

눈이 덮은 성인봉은 죄다 비워져 평온하다. 산을 비우는 일은 눈만이 할 수 있다. 마음을 비운 성인봉이 묵언으로 참선하고 있다. 비워버린 순백은 감정마저 없어 보인다.

신이 주저하지 않고 일필지휘로 그린 동양화 같은 설산이 감흥을 일으킨다. 히말라야 산을 옮겨 놓은 듯하다. 눈을 뜻하는산을 뜻하는말라야가 날선 형상화와 사유를 일게 한다. 성인봉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마음을 치유를 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허리를 틀어 산봉우리들을 본다. 산 아래에는 검푸른 동해바다를 끼고 사는 민가와 제 작년 55년 만에 개통된 일주도로와 저동항의 촛대바위 설경이 절경이다. 손으로 당기면 줄줄이 오징어가 끌려올 듯하다. 보이지 않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온다. 눈이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에 눈꽃인 상고대를 피웠다. 어떤 예술가도 넘보지 못하는 상고대는 아름다움이 낼 수 있는 신의 또 다른 걸작이다.

성인봉에 오르면 주위 산봉우리의 신비한 묘기를 볼 수 있다. 젖봉은 영락없는 어머니 젖을 닮았고, 할미봉은 봉오리는 펑퍼짐하게 쳐져 있으며, 처녀봉의 봉우리는 끝이 뾰쪽하다. 그 봉우리들이 하나 같이 흰색 옷을 갈아입고 긴 동안거에 들어있다. 침묵의 산은 강한 정념을 불러온다. 햇살에 빛난 황홀한 윤슬이 넋을 앗아간다. 강한 기를 내뿜는 돌산. 샤먼을 일어 두렵고 마음까지 흔들린다. 어차피 삶이란 흔들리는 배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이라 하지 아닌가.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지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어진다. 불현 듯 눈을 녹여 정화수를 만들고 비손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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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하얀색을 상징한다. 순수함과 기쁨, 숨결, 승리, 영광, 불멸을 대신한다. 그 눈이 성인봉을 지배 하고 있다. 눈 덮인 봉우리들이 맏형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린다.

눈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하얀색 옷을 입었다. 녹아 사라져도 찾기 쉽도록 하얀색 옷을 입었다. 눈이 녹아 떠날 때를 알고 준비하는 유비무한이 있다. 역광 햇살이 눈을 녹이며 방어기제인 자외선을 내뿜는다. 반사된 자외선은 흙보다 네 배가 많아 불덩이다. 눈과 독이 오른 햇살의 전투가 치열하다. 햇살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비춰져 예상대로 변모시키는 마법을 지녔다. 눈이 하얀색인 이유는 빛의 산란 때문이다. 육각결정구조인 눈이 빛을 반사시키면 다양한 빛이 혼재하여 흰색으로 보여 진다. 이는 상호작용의 현상적인 존재 때문이다. 파도가 바다에 사라지기 전 잠시 흰 모습을 보여 주듯이 눈도 잠시 머무는 과정일 뿐이다. 구름이 무리지어 눈앞에 지나가는 광경 또한 오래 볼 수는 없다.

온 몸을 밀어 정상을 올랐으니 내려와야 한다. 문득 뒤돌아보니 눈이 덮여 길을 잃은 나를 발견한다. 내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눈을 감은 겨울 나목처럼 눈을 감고 성찰해 내 길을 찾아낸다. 극한 아름다움에 감흥하고 기쁨을 누렸던 몸에 마음을 태워 내 길을 간다.

신선이 사는 성인봉 눈은 멋이 있어 신명난다. 마음을 다스리며 명상에 젖은 순례였다. 명상으로 눈의 정기를 머금은 내 마음에 순결하고 흥겨운 해일이 인다. 동해의 강한 기를 모은 성인봉 정기를 가득 받아 몸이 가볍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산을 오르며 누린 희열과 환희의 호사를 접었다. 신의 솜씨로 빚은 최고의 동양화는 흰 눈으로 조각한 성인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