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이 생생한 장생포 고래마을 걷다
전국 유일 고래문화특구인 울산 장생포 일원은 요즘 인기 드라마 '우영우' 영향과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효과로 최근 수년 사이 최다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합니다.
울산 남구도시관리공단에서는 올 7∼8월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방문객은 29만 8천 757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점점 유명 관광지로 귀추가 주목되는 장생포 고래마을을 탐방하고 왔습니다.
고래마을로 가기 위해서 고래박물관 건너편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관광객들을 실은 모노레일이 신나게 달렸습니다. 모노레일을 탈 수 있는 곳은 문화광장 매표소입니다. 예약은 안 하셔도 되고 현장 결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모노레일 운행은 10:00 ~ 18:00이며 가격은 성인 11,000원 어린이 7,000원입니다. 고래마을 입장료도 따로 있지만 가격이 저렴한 편입니다. 모노레일을 타면 밖에 경관이 다 보이고 풍경 하나하나가 또 다른 여행의 멋을 더해 줍니다.
울산대교도 보이고 꽃도 보이고 내리고 싶지만 내릴 순 없었다고 합니다.

올라가는 길은 모노레일 대신 걷기를 택하다 보니 경사 지고 나무로 만든 계단이 많아 오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늦더위로 햇살이 강해 비지땀을 흘리면서 숨을 허덕이며 산 언덕 중간쯤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오르막을 지나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광간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매표소로 가는 길 안내 표시에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오가는 모노레일의 풍경이 부러움을 일으켰습니다.
길가에는 고래 만나는 길이 펼쳐졌니다. '고래와 숲'으로 고대 육지에 살았다고 하는 고래를 묘사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고래와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면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전설을 담은 숲 속에 포토존을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만난 조각 작품은 '소녀와 고래' 작품으로 어부 할아버지의 손녀와 장생이 만남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하는 고래의 순수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조각은 '물결과 고래'로 실제 바다에서 유영하는 고래 모습을 조각해 사람들이 고래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묘사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래와 함께' 작품은 고래 생태 체험관의 돌고래와 장생포 주민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재현하여 고래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고래문화마을 주요 볼만한 곳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고래마을 탐방을 위해 관리사무소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자그마한 동산 형태의 잘 꾸려진 정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대형 고래를 지붕으로 이고 있는 매표소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입장료는 2,000원으로 매표 시간은 09:00~17:30까지이며 관람은 18:00까지였습니다. 결제 수단은 현금으로 인한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카드로만 가능했습니다.
'장생포 고래마을' 간판을 달고 방문을 환영하고 있는 마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설레게 했습니다.
16개 특색 있는 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요약한 배치도가 있어 관람을 쉽게 했습니다.
돌담과 추억 속으로 사라진 간판들이 옛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보다는 가난했던 한 시대의 문화의 속살을 보여 준 마을 골목길이 참으로 많은 감회를 불러왔습니다.
길거리에 내 걸린 현수막 글귀들이 주어처럼 시대상을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장생포에서는 유일했으며 1964년 개교한 장생포초등학교로 갔습니다. 당시는 60명이었지만 포경 전성기에는 2천 명을 상회하기도 했습니다. 교실 내부에는 바다 생물관과 고래유물을 전지하여 고대에 대한 흥미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학교 뒤뜰에는 반공교육의 히로어로 부각된 이승복 동상이 있었고 마을로 통하는 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눈길 주는 곳마다 문자가 아닌 기억 속의 이야기가 마구 뛰쳐나와 두뇌를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초등학교 건너편에는 고래를 해체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많은 인부들이 잡아서 끌고 온 고래를 해체하는 작업은 만만찮아 보였습니다. 한 켠에는 고래를 끌었던 각종 기구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고래 기름을 짜서 공업용으로 활용했던 착유장이 옛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부끄러워 도망치는 아이와 여학생의 모습이 뭔가를 이야기 해주고 있었습니다.
요즘 찾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 난 고래 국숫집과 고래 막집 고래 기념품 가게 간판이 골목길을 아우르며 위풍당당하게 복고풍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끼니때가 아니라 한산했지만 곧 붐빌 것입니다.
초라하게 보이는 우체국과 고래빵 연구소 건물이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문자 언어가 아닌 침묵 언어가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어 놓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서점과 다방도 지지 않고 역사를 통틀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마다 조금씩 자라온 환경이 다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뭉클한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마을 정취였습니다.
온갖 상품들을 판매했던 '상회'와 포경이 활발했던 시대에는 장생포는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풍자 뉘앙스가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간판에 씐 단어마다 무슨 사연을 가득 담고 설명하기에 바쁩니다.
교복을 팔았던 맞춤 장생 교복점과 체육사, 텔레비전, 영화관들이 꼭 들어 찬 골목에서 당시의 역사를 전부 듣기에는 역부족일 만큼 구수한 옛이야기가 가슴을 울리고 지나갔습니다.
시종일관 고즈넉한 역사를 들려주었던 옛 장생포의 마을이 스마트 관광 적용, 옛길 조성 등 추가 건설로 방문객이 계속 찾아오기를 앙망하면서 걷기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