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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의 파도

在綠 2005. 5. 1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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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모인 가족들과의 정 나눔을

뒤로하고

서둘러 돌아 온 울산, 

울산에 오래 살았으니 귀소본능은 어쩔수 없나

보다. 고향이 경북 울진이라 오고 가는데 약간

밀렸지만 쉽게 오고 갔다.

동해의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편히 다녀온

고향길이었다. 지금은 울진읍 소재지가 친가지만

5년전만 해도 겹겹이 산으로 에워쌓인 두메산골에

친가가 있어 설때마다 많이내린 눈으로 인해 

무척 고생을 했던

그래도 눈감으면 낙원 같은 내고향 울진!

지금쯤 눈 덮힌 산야에 노루며 멧돼지 뛰어 놀고

순둥이 대자연이 살아 숨쉬는 은빛 왕피천에

피리, 꺽지,쏘가리가 헤엄치는 그곳에 내고향이 있다.

유명한 불영계곡을 지나 1시간 남짓 산을 넘으면

한폭의 동양화로 남아있는 내고향 왕피천!. 

소시때 떠나온 고향이기에 유달리 향수가

짙은 나로서는 유년기의 보고(寶庫)이자

추석이면 한 번은 꼭 찾는 그리움의 고향이다. 

설에 듬뿍 짙은 향수를 안고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울산으로 다시 왔지만, 오늘은 왠지

마음이 허전하다.

긴 설기운에 겨워 방어진반도 바다로 향했다.

벌써 귀울하느라 지친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고

시내 거리마다 생기가 돌기 시작한 울산에

길떠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오기 시작한

그 시각,

찬 바람이 불어오는 방어진 바닷바람 맞으며

길떠난 사람 대신 잿빛 갈매기떼가 진을치고 있는

비린내 자욱한 바닷가에 발길을 멈추어 섰다.

 

마른 오징어를 팔기 위해 노점에 전을 펼친

촌노인의 얼굴에 누룩빛 근심이 흘러내린다.

살기 위해 어설픈 삶의 끈을 이어가려는 늙은

아낙의 가쁜 외침소리가 가슴을 울리고, 저만치

멀어져 가는 오염된 바닷물결은 정처없이

철썩이며 기구한 삶의 현장을 씻어내린다.

엔진을 멈춘 수많은 고기잡이 배들이 가득히 닻을

내려 숨을 죽이고, 그 틈새에 한무리 바다오리떼

유유히 먹이를 쪼이는 광경이 그림처럼

스치우는 울산항은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슬도가 있었던 마을에는, 설을 맞아 고향을 찾아

사람들의 차량으로 마을 어귀가 붐비고

긴 방파제 사이로 대어를 노리는 낚시꾼들의

긴 기다림이 파도소리에 묻혀 유유히 사라지고

있다.

긴 세월동안 울산에 살면서 낙후된 어촌 마을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놀라며 자문자답 해본다.

 

문이 굳게 닫힌 낮은 어촌 가옥들이 씁쓸하게

눈에 띄고, 줄에 묶힌 개 울음소리가 한 바탕

마을을 돌고 나면 이내 파도소리에 묻히는 곳.

으쓱한 해변가에 썰물이 일고

아기자기한 모습을 드러낸 바위들 사이로 해산물

들의 행진이 신비롭게 펼쳐지고,

바다가재를 쫓다 일어서면

차가운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기다림의 순간을 맞고 있는 낚시꾼들의 다문 입술

사이로 적막한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간간이 산기슭에 오두막집도 보이는

그야말로 벽지마을 같은 바닷길 걷기를 한

시간 남짓.

신비의 세계를 탐험이라도 하듯 그렇게

걷는 그길에 모난 바닷돌과 자갈이 즐비하고

모질게 질긴 소나무가 신비를 자아내게 했다.

숨겨졌던 으쓱한 길을 지나 공동묘지를 지나치고

녹슨 군 철책선 사이로 누군가가 키운 사나운

개소리만 들리는 길을 급히 걸어 

작년 여름날 와 본 공무원 연수원 바닷가를 돌아

울기공원 대왕암에 당도했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온 대왕암은, 때마침 썰물이라

본색을 드러낸 바위들의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묘한 바위와 바닷물이 만들어 내는 파노라마는 넋을 잃게 했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았다.

짙은 청록색으로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었다. 

바다 먼곳에 시운전 나온 대형배가 떠 있고 

가동을 멈춘 현대중공업의 모습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바라만 보아도 뭉클한 바다!

차디찬 겨울 바람까지도 밉지않고 정감이 온다.

대왕암에 부딪히는 포말에 혼을 빼앗긴 듯  


파도가 연출해 내는 작은 공간에서 가슴을

울리는 감흥에 젖는다. 


파도가 밀릴 때에는
하얀 거품이나

속은 짙은 청록색인 물빛이 그리

고울 수가 없었다.

바위마다 각각 다르게 나는 오묘한 파도 소리는

어느듯 화음이 되어 Live 음악이 되 버리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의 모습을

맘껏 바라 본다. 

설핏한 바닷가에 홀로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낚시꾼의 모습이 담긴 바다를 바라보는

감흥이 신이났다. 

날이 저물자 홀로 있던 났시꾼을 보트가 어렵사리

태워, 넓은 바다위를 쏜살 같이 달려가 버리고

긴 파도의 흔적만이 풍랑을 만들며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그림 같다.

 

울기공원 해변을 한 바퀴 돌았다.

방어진 방파제에서 이곳까지 두시간을 넘게

걸었다.

벌써 다리가 아프다며 아내가 약간의 고통을

호소해 왔다.

멀리 삶의 터전이 펼쳐지고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역동의 기운이 전해지고 있는 방어진 반도!

 

차디찬 솔바람 사이로 숨겨진 낭만이 흐르고

군밤, 번데기,옥수수.... 노점상을 접는 할머니들

바쁜 손길이 긴여운을 남기며

올망졸망 멈춰선 일산해수욕장 한켠

저물어 가는 겨울날씨는 더 차갑게 볼을 아리게

 하지만, 고깃배 사이로 잿빛 갈매기떼가 힘차게

날아간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느낌을 들게했다.

방어진 항의 비린내를 맡으며

꿈틀대는 문어 한 마리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뭉클한 방어진 반도의 감동을 가슴에 묻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