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설악산 명소, 흘림골에서 주전골까지

在綠 2025. 10. 20. 13:18

 

올해는 유독 설악산과 인연이 깊나 보다.

81일 대청봉, 914일 곰배령에 이어 이번에는 흘림골로 함월산악회 정기산행 동행이다.

 

꼭두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마음에 담고 있는 삿된 생각을 지우러 가는 설악산이다.

비가 내려 기분마저 빗물에 젖는다. 화려한 단품이 필 계절인데도 다르게 가고 있다.

 

 

산을 덮은 안개가 그림을 그리는데 신을 그렸다가 지우고, 가을 동양화를 그리는 등 변화무쌍하다.

달려가는 차창 밖에는 푸른 계절의 기세가 여전하고, 몸서리친 최악의 무더위를 씻어내고 있었다.

 

가을이 동행하는 길이라 그나마 위로가 된다.

비를 맞으면서 도도하게 풍기는 풀꽃 향과 맥을 못 추는 가을 향취가 풍긴다.

마음을 열어 가을을 맞아 본다.

 

 

원주를 지나자 해가 나고, 가을 햇살이 깊숙이 드나들며 두근거리게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무엇인가 만나기 전의 설렘 같은 것이지 싶다.

 

 

어른거리는 설렘에 설악산의 고운 단품과 인연을 맺는다는 선입감이 위로를 준다.

늦은 단풍이 서막을 올리는 중이다.

 

여운이 깊었던 구수한 황태처럼 다가오는 그 맛을 맛보기 위해 고전소설 같은 흘림골과 주전골로 향한다.

멋진 설악의 가을과 만나기 위해 장장 6시간을 버스로 달려서 한계령 서쪽에 도착했다.

 

 

흘림골 탐방지원센터에서 남설악산 점봉산 심심계곡 흘림골로 들어섰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이 초병처럼 줄지어 서서 예고도 없이 나타난 길손을 위압한다.

 

 

어제 내린 비로 물줄기가 굵게 요란한 물소리를 앞세워 위세를 과시한다.

하늬바람을 일으키니 풍류가 절로 난다. 신의 모습 같은 선경에 도취 된 한량이 된다.

 

 

과히 감동을 초월한 환희를 마음에 주유한다.

이직은 풋내가 가득하지만, 점점 홍엽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에 슬쩍 끼어드는 개울물이 뭔가를 간절히 호소한다.

 

 

그 소리가 전하는 득음을 알아듣지 못한 내가 안타깝다.

수백 년 된 전나무와 단풍나무, 주목들이 뒤섞인 흘림골의 장관이 한 겹씩 벗겨진다.

 

 

하늘에 비손하며 우뚝 서 있는 바윗돌이 빙 둘러서서 하늘에 비손하고 있다.

하여 풍우에 무너지지 않고 속세에 남아 있나 보다.

 

 

깊은 계곡과 바윗돌, 하늘이 건네주는 풍경을 동화책 넘기듯이 탐독한다.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면서 경사진 계곡을 오른다.

 

이제 깊은 흘림골을 벗어나 가파른 깔딱 고개를 오른다.

시작부터 오른편에 서 있는 우람한 바위봉우리가 동행한다.

 

 

뒤에는 일곱 형제 바위가 부럽게 서서 수도승처럼 참선에 들어있다. 이름 모를 산의 신이다.

신체(神體)라 했던가. 신의 몸이라는 뜻으로 애니미즘(animism)이다.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 영적 생명이 있다는 원시 신앙 관념이다.

 

 

흘림골은 숲이 짙고 또 깊어서, 그곳에 들면 늘 날씨가 흐린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때 무분별하게 쓰레기가 나뒹굴었고 탐방로 훼손도 심한 과잉 관광으로 폐쇄되었다.

 

1985년 흘림골 자연휴식년제를 선언했고, 무려 20년 뒤인 20049월 개방했다.

20158월 낙석사고로 등산객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7년을 정비해 2022년 재개방된 3.1km 길이다. 현재 흘림골에만 낙석 위험 지점이 20여 곳이다.

설악산은 사람 70세쯤 된다. 오래된 협곡과 암반이어서 언제나 낙석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흘림골의 황홀한 가을의 설렘이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 만남은 공통점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설파했던가.

 

흘림골과 나의 만남은 처음에는 설렘이 지나친 탓인지 반가움보다는 그냥 밋밋했다.

그저 흔한 골짜기였고, 신비하기는 했어도 바윗돌이 반겨주는 게 전부다.

 

 

그러나 흘림골 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 물소리가 감흥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아직 내게 정열이 남아 있는지 오묘한 바윗돌이 현란한 모습을 선보이며 구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경이 점입가경으로 몰입하면서 그런 구애를 받아줄 여유도 없어 지나쳤다.

차디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고운 단풍을 낙엽으로 떨어뜨리며 훼방을 놓는 바람에 연애 감정이 없었다.

 

 

흘림골 입구에서 900m 지난 지점에 여심폭포가 유혹한다.

긴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면 한족으로 약간 기울며 떨어진다.

 

바위와 폭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여심폭포라 부른다.

독특한 모양이기 때문에 여성, 모성과 연관 지어 여심(女深)이다.

 

2015년 탐방로 폐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깊은 곳을 연상케 한다.’라는 민망한 안내문이 있었는데 그 문구는 사라졌다. 새 안내판에는 바위와 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여심폭포라고 한다.’라고 쓰여 있다.

 

여성 혐오의 표현이어서 바꿨지만, 좀 어색해서 수정해서 안내판을 붙였다.

높이 50m의 작은 폭포로, 규모는 작고 물줄기가 약하지만, 여전히 모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해발 1,002m 등선대는 불쑥 솟아오른 봉우리다. '의자 바위'라고도 불리는 등선대는 의자 모양의 암봉이다.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여 설악의 비경이 펼쳐지는데, 전망대에서 보니, 칠 형제 바위가 줄지어 서서 위용을 자랑한다. 서북 능선이 압권이다. 일곱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칠형제봉이다.

 

늘씬한 두 다리 사이로 물줄기가 길게 흘러내리는 모양의 여심폭포에 작은 전망대가 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산마루에 닿는데, 전망대 역할을 하는 등선대는 탐방로에서 약 200m 벗어나 있다.

 

 

한계령 휴게소가 보이고, 장엄한 산줄기가 감싸고 있다. 왼쪽부터 안산(1,430m), 귀때기청봉(1,578m), 끝청(1,610m), 대청봉(1,708m)이 파노라마로 연결된다.

아름다운 단풍과 기암괴석 그리고 계곡이 어울린 전대미문의 절경이다.

 

 

등선대에서 용소폭포가 있는 주전골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가 만만하지 않다.

산줄기와 골짜기에는 이제 막 울긋불긋 가을색이 섞여 있다.

 

 

우람한 바위봉우리와 단풍은 한 폭의 걸출한 산수화다.

바위에 바짝 붙은 구간은 낙석 방지를 위해 철망으로 터널을 만들었다.

 

등산길은 기암과 계곡을 따라 휘어진다.

등선폭포와 십이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를 쏟아낸다.

물가의 고운 단풍이 눈길을 끌지만, 단풍보다는 기기묘묘한 바위봉우리가 압도한다.

 

 

계곡에 이르자 가느다란 물줄기가 길게 떨어지는 등선폭포와 마주쳤다.

탐방로와 나란히 이어지며 세찬 물소리를 내는 십이폭포와 옥빛 용소폭포, 주전폭포, 십이폭포를 지난다.

 

 

곳곳에 서 있는 기암괴석. 단풍이 어우러져서 기가 막힌다.

십이폭포를 거쳐 주전골에 이르면 용소폭포, 금강문, 선녀탕 등의 비경이 펼쳐진다.

 

 

주전골은, 용소폭포 입구에서 보면 시루떡 바위가 엽전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또는 한계령을 넘던 강원도 관찰사가 이 일대에서 엽전을 만들고 있는 무리를 발견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흘림골 단풍은 많은 기암괴석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202410월에 건설한 전망대가 압권이다.

가을날 노모의 주름살같이 쪼글쪼글했던 마음은 기쁨으로 활짝 펴지게 만든다.

 

흘림골 코스는 용소삼거리에서 끝나지만, 오색약수터 탐방지원센터까지는 2.7더 걸어가야 한다.

용소폭포 코스에서부터 주전골이 시작된다.

 

삼거리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용소폭포와 주전 바위가 이목을 끈다.

용소폭포는 이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라 했다.

 

 

넓은 암반에 얇게 펴진 물줄기가 한군데로 모여서 웅덩이로 떨어진다.

맑은 옥색 물빛이 커다란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부근에 시루떡을 층층이 쌓은 듯한 퇴적암층이 있다.

누구에게는 동전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 주전(鑄錢) 바위로 불렸고, 계곡 명칭도 주전골이 됐다.

 

 

주전골은 계곡 폭이 한결 넓고, 탐방로도 대체로 원만하다.

대신 계곡 좌우와 전후로 펼쳐지는 바위봉우리는 아래서 올려다보는 형국이라 한층 아찔하고 웅장하다.

 

 

단풍철 설악산은 명불허전이라 했다. 가을의 단풍철 선봉에는 설악산이 장식한다.

단풍 절정기는 아직 이르지만, 흘림골에서 주전골까지 호방한 약 6km 길을 걸었다.

 

 

흘림골은 온통 단풍과 기암괴석의 상징물로 가득하다.

특히 방문객의 정서함양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기념비적 힐링 공간이다.

 

 

작별하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제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이별이라 하고, 제힘으로 힘껏 갈라서는 헤어짐을 작별이라고 했다.

겪는 이별이 아닌 하는 작별했다.

 

 

우연히 만남이 아닌 예정된 작별을 했다. 명불허전을 호강했으니, 최고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