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조류생태관광 홍보단

일제가 수탈한 곡식·항공유를 보관했던 태화강 동굴피아 탐방

在綠 2023. 9. 14. 23:41

태화강 동굴피아는 망국의 슬픔을 감내해야 했던 일제강점기에 뚫은 인공동굴입니다. 1928년 일제가 달동에 건설한 민간비행장을 민간용으로 개조하면서 방호진지 및 군수물자 보관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4개 동굴의 총 길이는 제1동굴 60m, 2동굴 42m, 3동굴 62m, 4동굴 16m로 총 180m 규모입니다.

동굴피아 안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가 이어집니다. 입구 안내소에서 필히 안전모를 써야 했습니다. 입구 보관대에 있는 안전모를 쓰고 나니 마치 용감한 동굴 탐험대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1동굴에 들어섰습니다1910년대의 울산객사였던 학성관의 모습과 태화강 용금소 주변의 조개잡이와 태화나루 나룻배 사진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1920년대 사진은 울산초등학교, 울산의 시장 전경, 장생포 고래해체 작업, 방어진 향내의 모습을 담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1930년대 사진은 울산시민들이 동사 앞에서의 위생조사 모습 사진이 보였습니다. 지나간 시대의 시간을 초대한 사진 속 울산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의 우리가 호강을 하며 살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놋그릇과 식기가 눈길을 끌었고, 가정용 다리미와 주판이 고풍스럽게 전열되어 있었습니다. 흘러간 역사를 다시 조명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동굴의 형성 이야기가와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픈 흔적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또 일제강점기에 동굴을 파기 위해 강제 노역 중인 조선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었습니다

보름달을 이곳 동굴 속으로 끌어다 놓은 달 조형물이 운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굴착하는 탄광 헤머 드릴로 채굴과 운반 광차탑승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일제에게 강제 동원되어 노동을 했던 굴욕의 순간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제에게 강제 동원되어 강제로 노동을 했던 백성들은 태화강에서 조개를 줍고, 삼산염전 등에서 굽은 소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했습니다.

 

소나무에서 나는 기름 송탄유에 대한 설명이 이 동굴을 만들게 되었는지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등불의 원료로 사용되었던 송진이 대량으로 수탈된 것은 일제강점기 말부터였습니다.

1941년 미국은 자국 석유가 일본 군수물자 에너지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석유수출을 금지합니다. 일본은 부족한 석유를 대체하기 위하여 조선인들을 송진채취에 강제 동원시켜 송탄유를 확보했습니다. 노동착취에 시달린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기 시작했고 소나무가 수난을 당했습니다.

 

태화강 동굴피아는 1928년 일본군이 남구 삼산동 부지에 조성한 민간비행장을 군용으로 개조하면서 방호진지 및 군수물자 보관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울산비행장은 한국 최초 민간비행장으로 여의도 보다 5개월 일찍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만주 침략 전략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일본 본토와 근거리였기 때문입니다.

또 삼산일대가 평야지대 였기 대문에 비행장 건설에 적합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준공당시 공항은 남북 길이 60m, 격납고 350, 항공 사무소 65평이었습니다. 19318월에 첫 취항을 했습니다. 울산과 후쿠오카 사이를 12인승 쌍발 비행기가 매일 1회 운행을 했다고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국방부에서 관리하다 논으로 만들어 농민들에게 매각했고 1980년대 주거 단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은 동굴에 곡식뿐 아니라 소나무 기름인 송탄유를 비축하고 순사들은 제삿 집을 찾아가 놋그릇을 빼앗아 가는가 하면, 젊은 처자의 긴 머리카락과 비녀까지 가져가 동굴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식민의 서러움은 사흘이 멀다 하고 무보수로 강제 동원했으며 심지어 학생들을 하굣길에 끌고 와서 책보자기에 구멍이 나도록 곡식을 담아 울산비행장 격납고에 옮겼다고 했습니다.

 

해방 후 배고픔을 참지 못한 주민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쌀과 콩이 가득했지만 절반이 썩었고, 숱한 치욕과 광복의 기쁨을 억누를 수 없어 통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20년 동안 주류를 판매하는 주막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동굴 속 주막은 여름철에는 시원했기 때문에 한 번에 100여 명이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지금의 도로를 건설하며 붕괴 위험이 있어 폐쇄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간직한 태화강 동굴피아를 울산광역시민들에게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131226일 착공해 2017728일 개장했습니다.

총사업비 150억 원을 투입하여 남산로 주변의 노후 건축물과 환경을 정비해 도시경관을 개선했으며, 4개 동굴을 새로 정비하여 테마 동굴, 지하 광장, 학분수광장, 남산인공폭포, 주차장을 조성하여 역사, 문화, 자연을 담은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1동굴(길이 60m)은 일제강점기 울산의 생활상을 담은 역사체험 공간으로, 2동굴(42m)은 어드벤처 테마공간으로 조성했습니다.

3동굴(62m)은 동물 모형, 전설 고래 등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조명을 설치해 화려하고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4동굴(16m)은 꽃밭, 등골이 서늘한 귀신의 집, 아트갤러리, 겨울왕국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으며 태화강 연결도로를 조성했습니다.

 

트릭아트가 있어 빈센트 반 고호의 명작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으로 관람을 했습니다. 예술과 평화로운 바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직접 그린 초록물고기를 바닷속에 남겨 두고 떠나왔습니다.

일제의 만행을 느낀 산책이었고, 동굴관광의 진수를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동굴이라는 공간에서의 역사와 과거 문화체험이 오래 기억에 남지 싶습니다.

 

한 번쯤 동굴피아를 방문해 국내 최초 비행장이엇던 울산비행장 비화와 태화강 동굴피아릐 아픈 탄생의 비화를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