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주왕산 절골에서 대전사까지

在綠 2023. 10. 10. 00:17

가을 들판이 황금색 향연을 연출하는데 풍요롭고 넉넉하다. 익은 알곡이 무거운지 고개를 숙인 벼가 침묵에 들어있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 먹음직스럽게 구미를 유혹한다.

탐스러운 사과밭을 곁에 두고 가을바람을 맞으며 골짜기 속으로 들어간다. 주왕산 절골이 보여주는 가을의 풍광에 흥분이 일고, 횅하니 바람이 불어 싸늘하다.

풀은 오색 엽록소를 우려내 천연색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청아한 물소리가 멈추지 않고 노래를 불러주는 가운데 기분은 춤이 절로 나온다. 검은 고동과 피라미가 유혹을 하는 절골의 풍경이 초자연적이다.

마냥 아름다운 가을의 노래로 들린다. 격조 높은 음률이 넘치는 무도회 장이라 해야 옳다.

큼직한 나무들이 가득한 산골에 격한 생존경쟁에 뒤진 나목이 보이고 살아있는 것들은 단풍이 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길게 그리고 깊은 계곡인 절골에 바위들이 자리를 잡고 자태를 마음껏 뽐낸다. 흐르는 계곡의 물과 오묘한 바위산 그리고 농익는 나뭇잎이 시야를 유린하며 가슴속에 감흥을 잔뜩 불어 넣는다.

물들기 시작한 가을의 풍경이 사유를 일으키더니 한 편의 시를 읊조리게 한다.

잘 정비된 나무 덱과 징검다리가 이어진다. 바위에는 지의류가 만든 연두색 이끼가 끼여 있다. 그만큼 자연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대문다리가 나오고 여기서 1.5km 거리에 위치한 883m 가메봉을 향해서 산을 오를 채비를 한다.

아름답고 원시적인 자연이 펼쳐지는 절골과 작별을 할 시간이 다가 온다.

눈이 몽롱해진 7명의 악우들은 제 갈 길이 아닌 옆 계곡으로 향하고 말았다. 10여 년 전에 와본 경험도 소용이 없었다. 혹여나 해서 탐사를 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기로 했던지 철벽으로 길을 가로막아 놓는 바람에 홀딱 다른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시원한 바람이 뼛속을 씻어주고 원시 계곡에는 이정표도, 시그널도 사람이 다닌 길도 희미하다. 아니다 하면서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더는 길이 없는 곳까지 와서야 돌아섰다. 걸음은 바빠지고, 스스로 패잔병이 되어 왕복 2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자연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을 때, 가장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토요일 장장 8시간 버스를 타고 공주 마곡사와 부여 정림사지 성지순례를 하는 바람에 체력도 녹녹하지 않았다. 혹독한 걸음걸이를 했다. 달음질하듯 그리고 무엇에 쫒기 듯이 빠른 걸음걸이로 가파른 가메봉을 향해 올랐다.

산허리를 감고 도는 적송들이 압권이고 굵직한 도토리가 길바닥에 뒹굴며 지친 나를 달래준다. 만찬 수준의 점심식사를 마친 뒤 길고 가파른 길을 내려오는데 무릎에 통증이 일고 젖은 길이 위험하다.

화전민들이 숯을 만들었던 가마를 지났다. 푯말로 흔적만 남은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한 내원마을 터를 지났다. 옛날 막걸리 한 잔을 나누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100여 가구에 분교도 있었던 마을이다.

주막도 없어지고 둥지를 떠난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흔적이 없이 잡초만 무성한 내원마을을 지나쳐 왔다. 휑한 집터와 과거를 전하는 이야기를 음미하며 지나왔다.

용연폭포는 용이 살았고, 폭포의 깊은 곳은 바다와 통해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절벽에 움푹 파인 하식동굴들이 있단다. 폭포수가 소용돌이칠 때 튀어 오른 물이 바위 측면에 부딪혀 동그랗게 닳아 굴처럼 파였다. 끊임없이 준동하는 호수는 청초하기만 하다.

 

얕아 보이지만 절벽처럼 깊어 4m란.

주왕산의 가슴 뼈와 같은 그 모습,  한복판에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그 3단 용추폭포는 주방천을 따라 약 1이어지는 용추(龍湫) 협곡에 있다.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길목, 좁은 문을 지나 다다를 수 있는 무릉도원이라 했다. 살며시 바위를 넘고 주방천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도 정다운데 오묘한 바위가 곁들이는 산수화는 정영 가을의 노래였고 감흥을 발산하게 한 대 서사시의 장관이다.

과히 한국 3대 암산이자 조선 8경답다. 가메봉에서 흘러온 사창골에는 절구를 닮은 절구폭포가 있다. 옛날 1~3폭포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금지했던 용을 넣어 원래 이름으로 복원했다.

하늘로 솟구친 암봉들은 동물형상 같고 신의 형상인 바위가 압권이다. 계류에 있는 바위들이 보이고, 멀지 않은 능선에 잿빛 바위들이 고개 든다. 길은 가파른 바위벼랑의 틈을 비집고 나있다. 

주왕굴로 향하며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과 백련 낭자가 달을 보면서 향수를 달랬던 최고의 전망대인 망월대에 올랐다. 정면에는 연꽃을 닮은 연화봉과 병풍바위가 사이좋게 있다.

급수대는 신라 김주원이 절벽에 살며 식수를 퍼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학소대로 연결되는 거대한 수직 벽 바위들이 무리 지어 있다.

협곡 가운데에 우뚝 선 학소대에서는 청학과 백학의 슬픈 전설 탓인지 슬픈 기운이 느껴진다. 낙타 등 같은 산봉우리들이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시루봉 거석은 주왕산의 늑골 같아 보인다.

주왕암은 조계종 대전사 부속암자로 가학루, 요사체 나한전, 칠성각, 산신각등의 당우가 있다.

암자에서 30m 가면 협곡이 하늘을 찌르는 주왕굴이 자리한다. 굴 입구 절벽에 흐르는 물줄기는 폭포와 얼음벽을 오간다. 주왕굴은 길이 2m, 높이 5m, 폭 2.8m.

 

당나라 때 주왕이 진나라의 복원을 꾀했으나 실패하여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왔다. 당은 신라에 주왕을 잡아 달라 요청하였고, 신라는 마일성 장군과 그의 형제들로 하여금 주왕을 토벌케 했다.

세수를 하러 냇가로 나왔던 주왕은 마 장군의 화살에 죽었고 병사들은 승리를 알리는 대장기를 기암(琪巖)에 세웠는데 깃대봉이다. 이는 주왕산의 상징이며 심벌이 되고 있으며 대전사 뒷산에 우뚝 서있다. 주왕 아들 대전도군 이름을 대전사 뒤 기암 봉우리는 깃발 대신 소나무가 자란다.

 

길게 이어지는 주방계곡의 주방천을 따라 주차장까지 걸었다. 절골에서 가메봉을 거처 대전사까지 14km 거리를 6시간 만에 돌파했으니 체력이 고갈되어 휘청거린다. 호방한 길에는 가을이 사각거리고, 선경의 주왕산 풍경이 벅차게만 느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