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화강 조류생태관광홍보단에서 11월 29일 체류형 생태관광 선진지 견학을 떠났다.
목적지는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9에 있는 ‘함양개평한옥마을’이었다.
함양읍에서 약 8km 떨어져 있으며, 건축한 지 100여 년이 넘는 크고 작은 한옥 60여 채가 있는 집성촌이다.
하동정씨와 풍천노씨, 초계정씨 3개 가문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할 만큼 유학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이다.
일두 정여창과 옥계 노진 등 명망이 높은 인물들을 배출한 마을답게 학문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마을은 한옥의 고풍과 오래된 나무 재료의 질감, 그리고 고요함이 마음을 감쌌다.
과히 ‘전통 한옥 브랜드화 공모사업’에 선정된 마을다웠다.
이는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전통문화 숙박 시설로 육성하는 사업을 말한다.
예로부터 함양은 선비와 문인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다.

개평한옥마을은 14세기에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먼저 터를 잡아 살았다.
15세기에 풍천노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하며, 지금 마을에는 대부분 풍천노씨와 하동정씨가 살고 있다.
1570년에 지었다는 일두고택과 1838년에 지어진 오담고택, 1880년에 지어졌다는 하동정씨고가, 노참판댁고가, 풍천노씨 대종가 등의 고풍스러운 고택이 있다.

개평이란 두 개 개울이 합쳐지는 지점에 마을이 생겨 개(介) 자처럼 생겼다 해서 명명되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이 그렇게 생겼다.

그 마을에는 한옥이 주는 편안한 선과 기와지붕의 미, 그리고 고즈넉한 돌담길이 매력적이다.
수 많은 역사와 애환이 서려 있는 담장에도 세월이 이끼가 끼여 조즈넉하다.


마을 입구에서 1만 제곱미터인 일두고택에 들렀다.
일두는 조선 전기의 문인이요 성리학자인 정여창(1450년~1504년)의 호다.
그는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고, 1504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까지 당했다.
성리학사에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동방 5현으로 칭송된 인물로 문묘에 종사 되었다.

일두는 한 마리의 좀 벌레란 뜻이다. 책을 파먹는 벌레처럼 평생 학문에만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의 삶은 비극이었다. 1498년 무오사화 때는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는 죽은 그의 무덤을 파헤치는 능욕형인 부관참사였다.
그의 학문과 사상이 권력층에게 큰 위협이 어서 집안까지 풍비박산 난 것이다,

시련을 겪었던 그의 생가터에 후손들이 1574년 중건했다.
현재 남은 사랑채는 1843년, 안채는 1690년을 비롯해 100년 뒤에 중건했다.
전형적인 경상도 양반집 형태를 보여주는 ㅁ자형 배치 상류층 한옥이다.

솟을대문에는 효자와 충신을 배출했음을 알리는 5개의 '정려(旌閭)'를 게시한 문패가 걸려 있다.
가장 위쪽 충신은 일두 정여창을 말하고 아래는 효자 4명은 후손을 가리킨다.
나라에서 내린 5개 편액이 걸린 집은 일두고택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기둥에는 충효전가(忠孝傳家)과 일두고택이라는 주련이 걸려 있었다.

솟을대문을 넘어가면 넓은 마당과 행랑채가 있다.
바로 정면으로 가면 안채로 가는 일각문이 있고, 왼쪽에는 2m 높인 기단에 ㄱ자 사랑채가 있다.
처마에 걸린 문헌세가(文獻世家) 편액은 시호가 ‘문헌’인 정여창의 일가란 뜻이다.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하는 '충효절의' 와 김정희가 쓴 '백세청풍' 글씨가 걸려 있었지만, 고증이 안 되었다.

사랑채애서 즐길 수 있도록 앞마당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고고한 선비의 품격을 알린다.
법도에 따라 돌로 꾸린 수려한 석가산(石假山)이라는 인공산이 있다.

일각문을 지나면 一 자 모양의 안채가 나온다.
마루에 앉아 바라본 정원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고즈넉한 정적 속에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세월과 사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주는 듯하다.

일제에 팠다는 우물을 지나면, 왼쪽에 아랫방채가 보이고 안채 뒤로 별당과, 안사랑채가 따로 있다.
담장 안에는 가묘가 있다.
이 고택은 드라마 토지, 다모, 미스터 선샤인, 왕이 된 남자 등 여러 작품의 촬영 장소로 선택되었는지 정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사후 1세기가 지나 후손들이 그 터애 다시 지은 집이다.
흥선대원군과 김정희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2018년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1987년 토지' '2003년 다모' ‘2017년 1박 2일’ 등이다.
촬영장소로 일두 고택이어서 쉽게 관광명소가 되었다.

솔송주 문학관이 있었다. 530년 전통의 가양주인 지리산 솔송주가 유명하다.
조선 성종에게 진상될 정도로 명주였는데 하동정씨 문중에서 대대로 내려온 솔잎으로 담그는 솔잎 술이다.
1997년 복원,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함양 쌀과 지리산 암반 청정수, 봄에 채취한 솔잎과 늦은 봄 소나무 순을 재료로 만든 도수 13%의 부드러운 술이다.

일두 고택을 나오면 함양 개평마을 안내소가 있다.
옆에 정여창이 유배 중 함경도 안령 고개에서 읊었다는 ‘안령대풍’ 시비가 보였다.
정의가 회전하는 날을 갈망하며 남긴 시다.

‘바람 불기를 기다리는 바람은 불지 않고/ 뜬구름만 푸른 하늘을 가로막고 있구나/ 언제쯤에 시원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와서/ 온갖 음기를 날려 보내고 푸른 하늘을 다시 보려나.’

마을을 따라 걷다 보면 여러 채의 종가가 이어졌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모습도 특색있고, 기와의 색감이나 대문 형태에서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선비정신을 함께 느껴볼 수 있었다.

재현한 일두 선생 산책길로 올라간다. 마을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당송으로 불리는 처진 소나무 노거수 군락은 풍수지리상 마을 형상이 배 모양이어서 처진 소나무가 돛을 연상하게 한다. 높이 16m, 가지 둘레 21m의 적송으로 수령 500년 안팎인 듯하다.
해방 전까지 마을에서 당제를 지냈다고 했다.

그 아래 우물이 있는데, 마을에 다른 우물을 파면 배 밑에 구멍이 생겨 가라앉는다고 해서 300년 전 청하 현감을 지낸 정덕재가 우물 금지령인 종암(鐘巖)이란 글자를 새겨 경계했다고 했다.

오백 년이 지난 역사와 더불어 지은 지 100년이 넘는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전통한옥마을 역사여행을 하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
사화의 시련에도 올곧았던 선비정신을 계승하여 오늘날까지 마을을 시켜온 후손들의 정성이 느껴졌다.

최근 관광 트렌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체류형 관광'으로 진화하고 있다.
개평한옥마을은 보이고 들리는 모두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013년 전통음식 체험 마을로 지정되었다.
현재 속에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살아 있는 선비문화 풍류 역사를 품은 '콘텐츠의 보고'였다.
작은 투자로도 고즈넉한 한옥 체험을 원하는 국내외 관광객, 역사 탐방객, 동호회나 기업 워크숍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게 느껴졌다.

가평전통마을을 나와서 함양 ‘두레마을’인 하미앙 와인밸리를 찾았다.
유럽풍 산머루를 테마농원으로 ‘차별화’한 체류형 농원으로 발전시켰다.
산머루로 국내 와인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마을이다.

1만 평 규모로 조성된 이 마을은 산머루를 재배, 가공, 체험 및 관광을 융합한 6차산업을 통해 창조농업을 실천하는 대표 마을이었다. 농촌관광 기회를 제공해 체험과 휴양, 심신을 치유하는 체류형 농원으로 정착시켰다.

교육청 체험농원으로 선정되며 학교와 단체, 가족 단위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나만의 와인 만들기, 산머루 효소 담기, 와인 족욕, 산머루 떡·푸팅 만들기, 천연염색 등이다.

와인 음악회를 통해 충성고객을 유치하는 데 힘쓰고 있다.
울산 철새홍보관이 어떻게 나가야 할지 좌표를 제시한 소중한 선진지 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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