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지리산 칠불사 성지순례기

在綠 2025. 11. 24. 17:48

 

경남 하동 화개 십 리 벚꽃 터널을 지나 쌍계사 갈림길을 지나 뱀처럼 굽이쳐 흐르는 화개동천 계곡을 따라 가을이 서성이는 칠불사로 향한다. 계곡이 차에 효험이 있는지 차밭이 온통 계곡 주변을 채우고 있어 신기했다.

 

 

조선 후기 선사이자 다도의 중흥을 이룬 조의선사 다비탑이 신령하다.

1828년 칠불암에 머물 때 다신전동다송을 저술했다. 하동 화개가 차 시원지가 된 연유다.

 

 

주차장 옆 산기슭에 칠불사 사적비와 문수동자 탑, 부도를 한곳에 모아서 모셨다.

 

 

일주문은 성스러움과 속세를 나누는, 기둥이 하나라는 뜻이지만 네 개가 서 있다.

이 문을 지나게 되면 모두 평등한 법계에 들어와 하나 됨을 역설하고 있었다.

 

제법 가파른 명상의 길을 걸어 대웅전으로 향한다.

헌걸찬 나무들의 영접을 받으며 걷는 발걸음이 경쾌하게 느껴진다.

가을이 내려앉는 숲속 소리가 시가 되어서 들린다.

하늘을 이고 있는 지리산의 험준한 산세가 하늘의 구름이라고 끌어 내릴 듯하다.

그야말로 산정무한이요 전하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잿빛 구름이 지나가는 날렵한 산봉우리의 장쾌함이 명산의 진수 지리산의 저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하늘을 오르는 연못길이란 사자성어 천비연로(天飛淵路) 끝에 연못이 있음을 암시해 주었다.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 내외가 출가 중인 일곱 왕자의 성불을 기원하고, 그 모습을 그림자로 보기 위해 만들었다는 영지(影池)가 있었다. 2천 년 전 전설이 연못에 소야곡으로 흐르고 있는 듯했다.

 

 

내가 선 칠불사는 지리산 반야봉(해발 1,732m) 남쪽 기슭 800m에 있는 사찰이다.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고요하면서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사찰이다.

 

칠불의 스승인 문수보살이 상주(常住)한 사찰이다.

옥보선사를 따라 출가한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지리산에 운상원을 짓고 수행하여 6년 만인 1038월 보름에 성불했다고 해서 이를 기념하여 수로왕이 칠불사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훗날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으로 금강산 마하연선원과 더불어서 대표적인 참선도량이 되었다.

지금은 조계종 13교구 본사인 쌍계사 말사다. 1948년 여순사건 때 전소되어 30년 폐허로 있었다.

 

제월통광선사가 1978년부터 20여 년간 불사를 일으켰다.

 

 

절 마당으로 향하는 길가에 돌풍이 불었는지 나뭇가지가 부러져 길을 덮고 있었다.

길섶에는 꽃무릇이 꽃을 그리워하는지 바람에 푸른 줄기를 흔들고 있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자,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 쓴 편액이 고승이 머물렀다고 열변하고 있었다.

절집으로 빼곡한 경내에 들어서니,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고, 석가모니의 존칭 가운데 하나인 대웅전이 신령하다. 천 년의 시간을 건너와 나에게 보여준 불상의 미소가 푸근하고 넉넉했다.

 

 

대웅전 기둥에 장식 삼아 세로로 써 붙인 글씨인 주련은 불신은 온 법계에 충만하시어,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네. 인연 따라 두루 감응하지 않음이 없으나. 언제나 이 보리 좌에 자리하시네라 썼다.

불상은 청원 스님이 조각했으며, 현판과 주련 글씨는 여초 김응현이 집필하고, 정도화 교수가 새겼다 했다.

 

 

신통한 지혜로 중생이 원하는 바를 들어 준다는 문수전이 불자를 배웅했다.

강설과 참선을 하는 대중 방인 설선당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었다.

 

 

2층 누각 보설루는 설법과 교육의 공간이다. 부처의 음성이 들리는 원음각 종소리가 신령하기 여지없다.

칠불사의 상징인 아자방(亞字房)1976년 경남 유형문화유산 144호로 지정되었다.

 

 

선방 가운데의 바닥이 열십자 형태로, 버금 아()자 모양이라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길이 약 8m의 이중 온돌방 구조로, 방 안의 네 모퉁이와 앞뒤 가장자리 높은 곳은 좌선(坐禪)하고 십자형으로 된 낮은 곳에서는 좌선하다가 다리를 풀었다고 알려졌다.

 

 

높이 40cm 온들이 겹으로 설치되어 있다. 주로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선방으로 벽인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라 효공왕 때 구들 도사로 불리던 담공화상이 아자형으로 축조하여 만든 것이다.

 

특히 1,000년 동안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 했다. 한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 따뜻하였다고 한다.

한번 불을 때면 일곱 짐이나 되는 나무를 세 개의 아궁이에 넣어 한꺼번에 땐다고 하며, 화도(火道)가 막히지 않고, 높고 낮은 방이 고루 따뜻했다고 한다. 건물 뒤에 서 있는 굴뚝이 고즈넉한데, 온돌에 일조했지 싶다.

 

 

한국 정신문화의 산실인 칠불사는 영지와 아자방을 위시하여 옥보고(玉寶高)의 아악이며, 초의선사의 다신전의 산실이다. 하여 초의선사는 수석과 차의 정신을 마치 명상과 비유하는 철리(哲理)를 터득하고 수석의 문화까지 꽃피웠다.

 

 

칠불산(七佛山)으로 부르는 경석은 드문 명석이다. 칠불사 수석 역사는 약 500여 년 되었다.

그러나 도난과 유실의 위기를 주지 도응 스님의 관심으로 복원시켰다.

 

현재 잠을 쫓는 돌인 제수마석(除腄磨石)이 주지 스님 방에 있다고 했다.

초의선사와 교류했던 정약용과 김정희 등이 애호가였다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애석 생활에 젖은 초의선사를 찾아와 읊조렸다는 시가 전해져 올 정도다.

 

 

천 년을 넘어온 불상과 마주한 인연에 묵상했다.

시간의 흔적이 두렷한 묵은 돌에는 영혼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나뭇잎을 본다.

나오면서 들은 스님의 절창에 가까운 독경 소리가 피안, 영원, 허무, 인생을 여미게 한다. 한 무리의 불자들이 붐비고 바쁘게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는 칠불암.

 

나는 천 년이나 변함없는 부처의 근엄한 미소를 떠올린다. 그것이 내 인생의 묵직한 경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