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울산 동문회의 대구 명품 여행은 여러 의미를 품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조를 이루어 함께 걷고, 함께 식사하며, 함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일상에서 비켜선 자리에서 동문은 서로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며 가까워졌다.
팔공산 갓바위의 돌계단을 오르며 마음속 먼지를 털어낸 뒤,
우리는 대구의 오래된 삶의 결이 살아 숨 쉬는 서문시장으로 향했다.

서문시장은 재래시장 그 이상이었다. 대구라는 도시의 생활사와 애환,
그리고 생존의 체온이 켜켜이 쌓여 있는 거대한 삶의 저장고였다.

대구읍성 서문 밖에서 시작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
오랜 세월 동안 도시의 기억과 함께 성장했다.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시장은 시대의 흥망에 따라 달랐지만, 끝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장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특유의 활기가 온몸을 감쌌다.

좁은 통로 사이로 사람들의 어깨가 스쳐 지나가고,
상인들의 목청은 오래된 생활의 리듬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천장 아래 매달린 형형색색의 원단과 이불,
옷가지들은 거대한 생활의 깃발처럼 펄럭였다.

막 부쳐낸 전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여기저기서 끓는 김이 피어올랐다.
시장은 단지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냄새와 소리, 온기와 움직임으로 체험하는 살아 있는 풍경이었다.
주말이라 사람들은 물결처럼 시장 안을 오갔다.
자연스레 걸음은 느려졌다. 멈춰 서는 자리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관광객들이 손수건이나 기념품 하나를 두고 서툰 흥정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정겨움마저 느껴졌다. 화려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삶의 밀도가 그곳에는 있었다.
불편함마저 살아 있는 풍경이 되는 공간.
시장은 효율보다 관계를, 속도보다 체온을 먼저 품고 있었다.

수차례 화재를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서야 했던 상인들의 삶 역시 그러했다.
다닥다닥 붙은 점포들과 잡다한 상품들,
그리고 생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겹쳐져 오늘의 서문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2016년 대형 화재로 수백 개 점포가 잿더미가 되었음에도 시장은 다시 불을 밝히며 삶의 자리를 지켜냈다. 폐허 속에서도 다시 좌판을 펴는 생활력은 진정 강한 것이 무엇인지를 묵묵히 말해주고 있었다.

막걸리를 나누고 시장 구경을 마친 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천시장 옆 골목에 자리한 그 거리는 한 예술가의 삶과 노래를 다시 불러내는 공간이었다.
대구 대봉동은 가수 김광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쇠락해 가던 골목은 2010년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치며 추억과 음악이 흐르는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그의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오래전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던 목소리처럼 아련하고도 따뜻했다.

담벼락에는 기타를 든 그의 모습과 노랫말을 형상화한 벽화들이 이어졌고,
‘이등병의 편지’, ‘기다려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같은 익숙한 제목들이 시간을 거슬러 걸어 나오는 듯했다.

사람들은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저마다의 추억 한 조각이 숨어 있는 듯했다. 김광석의 노래가 특별한 이유는 화려한 기교보다 삶의 외로움과 위로를 담담하게 노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세월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골목 곳곳에는 오래된 문방구를 재현한 공간과 달고나 체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시간을 복원해 놓은 듯한 풍경 앞에서 동문은 나이를 잊었다.
바쁜 생애 속에서 사라졌던 동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감성이라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정서였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내어 현재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황정환 회장의 별장에서의 저녁 만찬이었다.
넓은 마당에 둘러앉은 80여 명의 동문은 하루 동안 함께 걸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어쩌면 진짜 여행지는 대구의 명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방송통신대학교 동문에게는 공통된 자부심이 있었다.
대부분 생업과 삶의 무게를 견디며 스스로 힘으로 공부를 이어온 동문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배움이었다.
그래서 동문이라는 이름에는 단순한 학연 이상의 연대감이 스며 있었다.
서로의 처지를 잘 알기에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조를 나누어 작은 공동체를 이루도록 기획되었다.
함께 움직이고, 함께 식사하며, 함께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동문들은
어느새 잊고 지냈던 낭만을 회복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11조 6명은 커피와 통닭, 파전에 막걸리를 마셨고,
동전 노래방에 들러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의미 있는 낭만을 누렸다.
경쟁과 효율 속에서 메말라 가던 마음이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졌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일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상고해 보면 인문학이란 거창한 지식의 축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타인의 삶에 공감하는 힘,
바로 그런 것이 인문학의 본질일 것이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새로운 장소를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경험이다.
현대중공업 입사 후 진로 변경을 위해 학사 편입을 하고 3년 간 공부한 이력이
가입을 망설였던 내게 방송대 동문은 우연처럼 다가왔다.
오랫동안 현중방송대 회장을 역임했지만 울산전체 동문회는 주저했다.
주변 동문들과 자주 만나 면서 결국 울산총동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내가 속한 다른 대학동문과는 달리 서로를 응원하고,

때로는 희생까지 감수하며 함께 걸어가는 열의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동문은 박애와 자비, 그리고 인(仁)이라는 오래된 말이 결국 타인을 향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 주었다.

이번 대구 여행은 서문시장의 활기와 김광석 거리의 서정을 지나 동문의 온기로 귀결되었다. 잊고 지냈던 시간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메말랐던 감성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 여행이었다.

삶은 결국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조금씩 깊어지는 것임을, 그날 대구의 골목은 힘주어 일러주고 있었다.
'여행기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부 아버지의 뒷모습 (0) | 2026.06.16 |
|---|---|
| 시간의 얼굴을 만나다― 김해, 시간을 품은 풍경 속으로 (0) | 2026.06.14 |
| 울산 태화강국가정원 동문 등산대회 참가기 (2) | 2026.04.12 |
| 함월문예동호회와 즐긴 수영만 요트놀이 (6) | 2025.07.20 |
| 영덕, 울진 명승지 기행 (0) | 2025.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