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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아버지의 뒷모습

在綠 2026. 6. 16. 09:28

 

6월의 한복판, 서울에서 열린 동창생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울산과 부산에 흩어져 사는 고교 동기생 10여 명이 혼주가 마련해 준 SRT를 함께 타고 서울로 행했다.

 

기차 안은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듯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그러나 수서역에 내려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 문득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졌다.

 

경로우대 무임승차 대상자가 된 우리들의 모습에서 세월의 길이가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벌써 자식의 결혼을 축하받는 세대가 되었고, 친구의 기쁨 속에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결혼식장은 분주했다.

시간 단위로 예식이 이어지는 도심의 예식장 풍경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행히 동기생 아들 예식은 마지막 5시라 다소 여유가 있었다.

 

 

잘 차려입은 하객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축하를 건네며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시작했다식장 안에는 샹들리에의 은은한 빛과 향기로운 꽃장식이 어우러졌다.

 

설렘과 기대가 잔잔한 물결처럼 번지고 있었다.

예식의 막은 4명의 신랑 친구들의 축가로 올랐다.

 

젊음이 넘치는 노랫소리가 식장을 가득 채운 뒤 신랑이 씩씩하게 입장했다이어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버진로드(Virgin Road)를 걸어 나왔다.

 

시선은 신부보다 신부 아버지에게 머물렀다.

딸의 손을 사위에게 건네고 안아주는 모습.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응축되어 있었다.

갓난아이였던 딸을 처음 품에 안던 날, 학교에 보내며 뒤돌아보던 아침밤새 열을 앓는 아이 곁을 지키던 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으리라.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부 역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들리지 않는 영혼이 묵직한 대화를 들은 듯했다.

 

아버지,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는 네 삶을 제대로 살아가거라.”

 

결혼식의 주인공은 분명 신랑과 신부였다.

그러나 기억에 깊이 남은 사람은 신부 아버지였다.

 

딸을 떠나보내는 그의 뒷모습에는 기쁨과 아쉬움, 안도와 허전함이 함께 배어 있었다그것은 딸을 가진 부모만이 지을 수 있는 묘한 그림자였다.

 

결혼은 흔히 새로운 출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에서 보면 또 하나의 이별이기도 하다.

 

하나 슬픈 이별은 아니어도 품 안에서 고이 키워 온 사랑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이다부모가 건네준 사랑이 또 다른 가정을 이루며 삶을 잇는 과정이다.

 

그래서 결혼은 끝이 아니라 사랑의 확장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주례를 맡은 목회자의 설교는 다소 길었다.

 

보통 주례사가 4분 내외이거나 생략하는 요즘 대부분의 결혼식과 달랐다주례사는 인생의 항로에 도움이 되는 좌표나 풍향계였어도 예식이 지루했다.

 

성혼선언까지 마친 목회자 주례사가 큰 울림을 주지 않았다.

하객들의 시선은 조금씩 흐트러졌고 휴대전화 화면을 보는 이도 있었다.

 

이어진 신부 친구들의 편지 낭독은 달랐다.

꾸밈없는 문장과 떨리는 목소리 속에는 함께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친구는 눈물을 훔쳤고, 신랑과 신부도 부모를 향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목이 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수사나 긴 설교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사실을진심은 언제나 가장 짧은 길로 가슴에 닿는 법이다.

 

 

예식이 끝난 뒤 만찬장에는 오랜 친구들이 모였다학창 시절의 추억과 첫사랑 이야기, 은퇴 후의 삶까지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미래보다 과거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어도 추억은 늙지 않았다.

세월이 더할수록 선명한 빛을 냈다.

 

문득 어린 시절 고향의 결혼식이 떠올랐다.

 

그때의 결혼식은 온 마을이 함께 치르는 잔치였다이웃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품을 보태며 한집의 경사를 모두의 기쁨으로 만들었다.

 

솥뚜껑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던 지짐이와 가마솥에서 건져낸 잔치국수의 구수한 냄새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가난했지만 사람은 풍요로웠고, 소박했지만 정은 넉넉했다.

 

오늘의 결혼식은 화려하고 편리해졌지만, 문득 그 시절 잔칫집 마당을 가득 메우던 웃음소리가 그리워졌다. 결혼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서로의 삶을 기꺼이 품어주겠다는 약속, 그것이 결혼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수서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서 생활하는 작은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쁜 일정 탓에 만나지 못하고 내려오는 길이라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을 축하하면서도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한 아들 생각이 스쳤다.

인연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다.

 

꽃도 계절이 무르익어야 피어나듯 사람의 만남 또한, 때가 되어야 맺어진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위안을 하면서도 부모의 바람은 늘 한발 앞서간다.

 

빠른 기일에 작은아들도 짝을 만나 새로운 출발선에 설 날이 오리라.

그리고 그날 나는 오늘 보았던 혼주가 된 동창생처럼 서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이 괜히 기다려지는 이유는 아마도 부모의 마음이란

결국 자식의 행복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의 화려한 예식장을 나서며 버진로드 끝에서 딸의 손을 놓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던 신부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세월에 늙어간다. 흰머리에 걸음도 느려진다.

 

그러나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만은 늙지 않는다자식이 태어난 날부터 떠나보내는 날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부모는 늘 같은 자리에서 사랑을 건넨다.

 

내가 느낀 것은 신랑 신부 뒷모습이 아니었다사랑을 키우고, 사랑을 보내고, 끝내 사랑으로 남는 모든 부모의 뒷모습이었다그래서 그 모습은 쓸쓸하기보다 숭고했다.

 

 

오랜만에 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산업도시 울산과는 또 다른 문화의 결을 느꼈다서울에 사는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랐지만 기차 시간에 쫓겨 울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둠에 덮인 서울을 뒤로하며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 앞에 숙연해졌다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붙잡는 일이 아닌 놓아 주는 데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