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립 31주년을 맞은 울산공단문학회의 올해 문학기행 목적지는 김해였다.
이번 여정은 서로 다른 시대가 남긴 시간의 얼굴을 만나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길이었다.
문지방을 넘어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행이 늘 새롭게 다가오는 까닭은 여정의 끝에서 또 다른 나와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살아온 내 자아의 진면목이 문득 궁금해졌다.

가야의 숨결과 근대사의 기억, 현대 예술이 한자리에 어우러진 김해는 과거와 현재가 웅거하고 있는 시간의 도시였다. 짙은 녹음에 묻힌 역사 숨결이 무더위를 식혔다.

첫 발걸음은 진영역사공원이었다.
김해시 진영읍에 자리한 이곳은 1905년 개통된 옛 진영역을 보존해 조성한 역사·문화 공간이다.
폐역 이후 철도테마공원과 국내 최초의 공립 철도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가 되었다.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서자 세월의 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107년 동안 김해의 관문 역할을 했던 진영역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품고 있었다.
누군가는 희망을 안고 기차에 올랐고, 누군가는 눈물 어린 작별을 뒤로한 채 플랫폼에 남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떠나갔어도 옛 역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래전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기억을 품은 채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옛 승차권과 철도 유물, 역무원과 철도경찰의 제복이 전시된 박물관은 한 권의 생활사였다.
특히 열차 내부를 재현한 공간에서는 도시락을 먹는 승객과 좌석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파는 행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했다.
역전 장터의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 진영 단감 이야기는 이 지역의 삶과 문화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다.

진영역사공원의 철도박물관 전시장은 진영이 지나온 시간을 기록한 한 권의 역사서였다.
여름 바람이 녹슨 철길 위를 스쳐 지나갔다.
철길을 따라 걷는 동안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풍경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듯했다.

이어서 찾은 곳은 올해 4월 개관한 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이었다.
김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김영원의 이름을 딴 공립미술관으로, 개관과 동시에 김해 문화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술로 그리는 미래, 모두와 함께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처럼 누구나 산책하듯 찾아와 예술과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특별전 《김영원, 형상을 넘어 울림으로》에서는 조각과 회화, 영상 등 3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제2전시실의 「경계는 울리고 생은 넘친다」와 제3전시실의 문자와 쓰기 행위를 주제로 한 전시는 예술과 언어,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선을 펼쳐 보였다. 작품들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사유의 문을 여는 존재처럼 다가왔다.

특히 1층 전시실의 「중력·무중력」 연작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80년대의 사회적 긴장과 인간 존재의 무게를 사실적인 인체 조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었다. 작가는 억압된 시대를 응시하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탐구했다.
차가운 금속과 단단한 재료 속에서 오히려 뜨거운 인간의 체온이 전해졌다.

이어지는 「해체」 연작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갈등과 혼란이 깊어지던 시대, 그는 형식을 허물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어냈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탄생을 위한 준비였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의 문턱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은 빛과 그림자, 현실과 관념, 육체와 정신을 하나의 세계로 아우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었다.

특히 「울림이 퍼지다」에 담긴 공명의 미학은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빛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그림자는 작품 밖으로 번져 나와 관람객의 내면을 조용히 두드리고 있었다.

김영원은 반세기 넘게 인체를 통해 시대의 파동을 기록해 온 예술가였다.
조각 165점과 회화 93점, 모두 258점의 작품을 김해시에 무상으로 기증한 그의 삶은 예술을 통한 나눔의 실천이기도 했다. 미술관 3층에 전시된 광화문 세종대왕상 제작 거푸집 앞에 섰을 때, 나는 한 예술가의 집념과 마주했다.


그는 돌을 쌓고 깎고 때로는 파내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며 탄생한 조각들은 인간의 몸을 넘어 삶과 시대를 담아내고 있었다.

작품마다 드리운 그림자는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남긴 흔적이었고, 생명의 숨결이 응결된 언어였다. 우연의 효과마저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의 작업은 현대 조각이 도달한 하나의 정점처럼 느껴졌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봉황대공원이었다.
조선 후기 김해부사 정현석이 이 구릉의 형상이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현재는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통합되어 금관가야의 역사를 품은 공간이 되었다.
이곳은 1500~2000년 전 금관가야 사람들이 살아가던 집단 취락지였다.

해반천 물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에는 고상가옥터가 남아 있었고,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형성된 조개무지도 발견되었다. 복원된 고상가옥은 발굴된 건물지와 집 모양 토기를 바탕으로 재현한 것으로 당시 가야인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었다.

공원은 소박해서 더욱 아름다웠다. 빼곡히 선 나무들은 묵묵한 품위를 지니고 있었고, 꽃대궁 끝에 핀 꽃들은 맑은 빛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있는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 뿐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득 사람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상이 있는 그대로 서로의 아름다움을 품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입신출세를 위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경쟁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지치며 마음이 메말라 가기도 한다.
그러나 향기로운 나무 한 그루와 마주하는 순간 삶은 다시 위로를 건넨다.
봉황대공원에는 그런 이야기가 바람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흙 속에 묻혀 있을 옛 그림자가 살며시 보일 법도 했다.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가야 병사 모형은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가야의 뛰어난 철기문화와 강인한 군사력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했고, 숲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맨발로 길을 걷는 사람들은 흙의 온기를 느끼며 자연과 교감하고 있었다.

숲길 끝에서 만난 높이 10m의 망루는 가야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대형 기둥 구멍들은 이곳이 금관가야 도성의 방어 거점이었음을 알려준다.


사라진 역사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땅속에 잠들어 있다가 어느 날 현재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진영역사공원에서는 떠난 기차보다 남겨진 기억이 더 오래 살아 있음을 보았다.
김영원미술관에서는 인간 존재를 향한 예술가의 치열한 질문과 마주했다.
봉황대공원에서는 이천 년 전 가야인 삶과 오늘의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실은 수많은 과거 위를 걸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김해는 가야의 숨결과 근대사의 기억, 현대 예술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도시였다.
서로 다른 시대가 충돌하지 않고 한 풍경 안에서 조용히 공존하는 곳.

그곳에서 만난 시간은 오래된 책갈피처럼 마음 깊은 곳에 꽂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여행은 끝났지만 김해에서 만난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마음 한편에서 천천히 흐르며 삶의 속도를 돌아보게 한다.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 다시 숨 쉬게 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여행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김해에서의 울산공단문학회 문학기행은 한 편의 명민한 문장이었다.

과거와 현재, 예술과 역사, 사람과 시간이 빚어낸 그 문장은
오래도록 가슴속에서 잔잔한 울림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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