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2일, 무한산악회 창립 30년 차 기념 산행 목적지인 경남 의령 한우산(836m)을 다녀왔다.
자굴산과 이어지고, 산세가 웅장한 길이 3km인 찰비계곡에 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는 산이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주연인 인성기, 송옥숙이 한우산을 내려오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몰락하는 가정사, 우마차를 끌고 하산하는 인생 역경의 상징 장면이 이곳 풍경을 빌린 곳이다.
쇠목고개에서 들머리를 잡은 탓에 쉬이 올랐던 한우산에는 전설의 상징물들이 이야기를 꾸리고 있었다.
한우산에는 도깨비 전설이 흥미를 끌었다.
한우도령과 응봉낭자가 사랑하며 한우산에 살았다.
동굴에 살던 도깨비 쇠목이가 응봉낭자를 짝사랑하며 망개떡을 주면서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화가 치민 쇠목이는 한우도령을 죽였는데 응봉낭자는 슬픔에 빠져 죽고 만다.
정령들이 응봉낭자를 아름다운 철쭉으로 한우도령은 찬 비로 만들어 서로 보살필 수 있도록 했다.
쇠목이는 황금 망개떡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착한 도깨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전설을 관광자원화 했지만 한우정과 하늘 전망대 외에 썩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무한산악회의 30년 째 첫 산행이 싱그러운 신록에 추억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산악회 역사 치고 유구한 3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읍내에서 벗어난 신반중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많은 악우들이 참가 했지만 대부분 무한과 오랜 인연을 맺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30주 년이란 의미를 꼽씹어 보는 이도 드물었지 싶고 큰 의미를 주지 않았지 싶기도 하다.
내가 1995년 5월 창립한 무한산악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22년 전인 2002년 봄이었다.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등산이었다. 현대중공업 과장으로 한가하게 산을 오른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화다리 아래에서 지인과 함께 무작정 관광버스에 올랐는데 무한이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산은 구세주였다.
마라톤을 했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고난이었다. 어금니를 악물고 3개월 고초를 겪었다.
그래도 산에 오르는 근력이 회사의 과중한 업무를 이겨 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당시 매주 산행이 잡혔던 시절이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산행에 동참했다.
얼마나 산에 빠졌던지 아들의 성장기에 전국을 제패했던 가족신문 '완두콩과 홍삼원' 기사에
큰 아들이 '틈만 생기면 산으로 도망치는 우리 아버지'라 빗내는 일도 있었다. 자고로 산행은 회사에 청춘을 바치고 있던 시절이라 산은 내 청춘의 방황을 달래 주는 놀이터였다.
산행경력 22년인 내개 누군가 왜 산길을 걷느냐고 물으면 그냥 취미로 걷는다고 쉽게 말한다.
하필이면 등산이냐 물어도 생활이 된 인생 놀이터라고 힘주어 말힌다.
산악회원들과 산길을 걷으며 우정을 도모하는 소중한 시간이있다. 거리가 멀어 이동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산이 있는 한강 이남 어느 곳이던 상관하지 않고 산길 걷기의 우등생이 되었다.
산길을 걷는 일은 나에게는 여행이고 순례였다.
쌓인 분노, 서운함, 상처로 만들어진 불행창고를 비우려고 험한 산길을 걷는다고 자인한다.
산길을 걷는 일은 인격을 수행하고 육체를 단련하며 내 자신을 잘 데리고 노는 인생의 놀이터다.
산길을 걸으며 산을 닮아 순수하고 청렴한 나를 훈육한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산의 기운으로 시퍼런 칼날을 만들어 삶의 묵은 때를 벗겨서 얼굴에는 상쾌한 미소, 마음속에는 이해심과 관용, 솔선수범과 도전정신을 함양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 나이 삼십에 삶의 길을 잃고 끝없이 추락했던 22년 전.
무너지는 나를 그저 바라볼 뿐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핍이 차면 절실해 진다고 했던가. 무작정 유년의 삶이었던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극한 노동이었지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었기에 호연지 하나로 산행능력을 키워 갔다.
행복은 마음을 단련해야 얻는다 했던가.
진달래와 철쭉에 반하고 만산홍엽에 반하면서 산에 점입가경으로 빠져 들어갔다.
삽상한 바람에 나무들이 수런거리는 득음은 최고의 명의였다.
닥친 삶의 추락을 멈추려는 노력은 혼신을 다한 집념이었고 몰입이었다.
시련을 극복한 이후 22년째 산길을 걷고 있다. 사무국장 4년, 산행대장 2년, 4번의 회장을 역임했다.
그것은 삶의 한과 서러움을 씻어주는 백신으로 처진 등을 펴고 고개를 들어 용기와 힘을 얻고 있으며 햇덩이에서 뻗쳐 온 광휘로 환희를 누리고 있다. 봄이면 연초록 생명에서 에너지를 수혈한다.
가을이면 황홀한 만추의 멋을 가득 품고, 겨울눈의 정취에 흠뻑 젖는 재미는 산길을 걷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닌가. 산길을 걷고 있노라면 무아지경에 들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호강을 누린다.
자연에서 답을 찾기 위해 번민과 생각하는 바를 내키는 대로 고백한다.
마라토너가 무념무상으로 달리 듯 오래 생각하며 자아를 읽는다.
자연에 기대어 내면의 번민과 아픔을 쏟아낸다.
그렇게 자연에 기대면 생각이 건실해지고, 명민한 해결책이 줄지어 나온다.
번민을 산길에 죄다 내려놓고 상쾌하게 걷는 자연인이 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자연에서의 사유는 언어를 파서 새기고, 기묘한 정서와 사고를 유발한다.
행동하지 않는 상상은 허상이라 했던가. 걸으며 나이상의 나를 글로 만들어 낸다.
산길은 인생의 길 같아서 삶을 앞서 엿보게 한다.
그런 이유로 삶의 장벽이 막히면 산에 오른다.
호흡음을 내며 걷다 보면 품고 있던 번민들이 소진되고 마음을 비운다.
명의인 자연이 치유해 주면 기분이 맑아지고 몸은 가뿐해져 평온에 빠져든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동물적인 몸짓이요 살아 있음의 증표라 했던가.
두 발로 걷는 일이 줄어든 작금에 산길을 걷는 일은 값진 선물이다.
시인 용혜원이 설파한 ‘갇혔던 곳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아나가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세상살이가 힘들 때마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산길을 걷는다.
생명을 폐 속에 담아 건강한 노후와 순탄한 여생 길을 걸어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산의 기운과 지혜가 내 몸 안으로 옮겨 오고 있음을 질감으로 느낀다.
이럴 때는 내 안에 산이 덩그렇게 서 있어 자신감이 생기고 의지가 든든해진다.
이제는 서쪽으로 기우는 연륜이 되어 인생의 산길을 걷고 있다.
스스로 두발로 산길을 걸으며 순수한 자연과 더불어 여행과 순례를 겸하고 있다.
강한 자가 아닌 강해지기 위해 산길을 걸으며 감동할 때마다 나로 사는 보람을 누리고 있다.
삶의 절벽을 만나도 우회할 수 있는 지혜를 익히며 갓생을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무한산악회 창립 30주년 노래가 구름에 실려 들려 온다.
나 태어나 이 강산의 산꾼이 되어 산을 오른지 어언 30년~
젊은 그대들이여!
50년, 100년을 준비하는 무한산악회로 발돋움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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