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일, 정신을 계승하고 애국심을 되새기는 국경일 오후 배를 탔습니다.
장생포항에서 고래바다여행선에 몸을 싣고 검푸른 동해에 붕 떠 있었습니다.
울산의 바다와 산업, 그리고 기억의 야간풍경을 만나는 야간 연안 투어 여정이입니다.


고래바다여행선은 4월~10월까지 운항합니다.
3시간 동안 진행되는 고래 탐사와 1시간 30분의 연안 투어,
그리고 이번처럼 야간 연안 투어로 나눕니다.
특히 주말에는 고래 탐사는 하루 두 번 운항합니다.

매표소를 지나 탑승할 고래바다여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체 앞뒤에는 귀여운 돌고래 그림과
‘고래바다여행’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선미는 노랑과 오렌지, 파랑, 연두색으로 산뜻하게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준비를 마친 선박은 마치 새로운 봄을 싣고 출항을 기다리는 듯 보였습니다.
2009년 7월 국내 최초로 취항한 이후, 2013년 4월 크루즈급 선박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울산의 해양관광의 상징이 되었있습니다.
최대 320명을 태울 수 있는 이 크루즈 선입니다.
뷔페식당, 공연장, 회의실, 휴게실 등이 있어 선상 행사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삼일절을 맞아 가로수에 태극기를 게양해 태극기 꽃나무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출항 소리와 함께 고래바다여행선은 장생포항을 떠났습니다.
잠시 후, 창밖으로 장생포고래박물관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장생포 고래문화 특구로 지정되어 포경문화의 역사와 해양문화를 계승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고래의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었습니다.
고래로 생계를 꾸렸던 울산 어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박이 속력을 내자 울산항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가 겨울 하늘로 천천히 퍼지고 있었습니다.
울산석유화학 공단의 거대한 설비들은 산업도시 울산의 심장처럼 묵묵히 숨 쉬고 있었습니다.

퇴역함인 울산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HD현대중공업에서 건조되어 34년간 바다를 지켜온 함정이 웅장했습니다.
이제 바다의 전사가 아닌, 전설이 되어 함정역사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침묵하는 거대한 선체는 긴 세월 동안 수행했던 전과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1층 선실에서 선상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리듬감이 있는 노래가 나오자, 승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여행의 흥을 나누었습니다.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리는 여행선 위에서 듣는 노래는 바다와 하나가 된 듯한 자유를 느끼게 했습니다.
항해하는 여행선 왼편으로 2015년 개통한 울산대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남구 매암동과 동구 일산동을 잇는 길이 1,800m 현수교는 웅장한 곡예로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업과 도시를 연결하는 거대한 선처럼 보였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의 조선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거대한 조선소의 설비들은 인간의 기술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풍경이었습니다.


연이어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의 야드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두 대의 1,600톤 골리앗 크레인과 해상크레인은 거대한 생명체처럼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산업의 위엄이자 인간승리의 표상이었습니다.

울산항에는 수많은 선박이 정박해 있었습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선박들은 오대양을 누비다가 숨을 고르는 듯 고요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고래바다여행선은 거침없이 광막한 바다로 항해했습니다.
광활한 수평선이 시야를 채웠습니다.

울산항의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바다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꾸미지 않기 때문이다. 가식과 허세를 버리고, 가면을 벗어 순수를 드러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감추는 게 없었습니다.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날며 공중에서 곡예를 펼쳤습니다.

먹이를 향해 몸을 던지는 그 순간은 완전한 자유의 몸짓이었습니다.
자유롭게 유영하며 동행하는 갈매기들이 먹이를 줍느라 곡예를 했습니다.
그것은 수준 높은 춤사위였습니다.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회색 실루엣이 되어 유영하는 춤은 신의 몸짓이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갈매기 놀이를 즐겼습니다.
사람들이 던져준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날아오르는, 역동적인 순간을 담아내려 몰두했습니다.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고래를 찾고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상에 앉아 펼쳐진 조선소와 석유화학 단지의 시설물들이 뒤를 쫓아올 것만 같았다.
기다림 속에서 나는 더 많은 풍경을 보게 되었다.
흔들리는 바다는 끝없이 넓었고, 산업시설들은 벌써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있었다.

3층 갑판으로 올라가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았습니다.
배는 방향을 바꾸어 왔던 뱃길을 따라 처음 선착장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둥근 수평선이 조용히 시야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고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그 자체로 충분한 위안이었기 때문입니다.
흥건히 적시는 끈끈한 체취와 번뜩이는 윤택한 피부, 언제나 출렁이는 풍만한 젖가슴,
저 관능의 출렁임이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물 한 모금 주지 않고도 갈증을 풀어 주며 수척한 어깨를 부드러운 품으로 안아 주었습니다.
푸른 가슴을 헤쳐 보이다가도 흰 파도로 위로했다.

멀리 방어진의 풍경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육지는 그리움처럼 다가왔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 풍경은 평화로웠고, 그 평화는 마음속 영혼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배는 밤 풍경이 아름다운 울산대교 아래를 지나서 다시 장생포로 돌아왔습니다.




불꽃놀이가 5분 동안 펼쳐졌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위로 터지는 불꽃은 찰나의 빛으로 밤을 물들였습니다.
바다는 그 빛이 황홀해 혼을 내려놓고 호강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내 삶도 저 불꽃처럼 찬란한 순간들을 품고 있었음을.
이윽고 고래바다여행선에서 내려왔습니다.

흰 물비늘을 일으키며 출렁거렸던 바다는 다시 고요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파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오래도록 내 안에서 출렁일 것입이다.
바다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한 길이요, 얼굴을 가린 범접할 수 없는 신이었습니다.
그의 깊고 푸른 바다를 보면서 내가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았습니다.
고래를 만나지 못한 여행이었지만, 바다를 만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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